본문 바로가기

철학/현상학

이남인, <후설과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이남인, ⟪후설과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한길사, 2013.

 

"정적[statisch] 현상학적 분석은 불투명한 소여의 정체를 해명하기 위해 거기에서 시작해 그 타당성의 정초토대인 명증적인 소여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그 이유는 정적 현상학의 경우 모든 불투명한 소여들의 타당성의 토대는 명증적인 소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 발생적[genetisch] 현상학은 어떠 소여가 있을 경우 그 소여의 투명성의 정도와 무관하게 그것보다 시간적으로 앞서면서 그 발생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체의 것을 해명함을 목표로 한다."(132)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이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에게서 받은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책이다. 책이 내세우는 핵심적인 테제는 메를로퐁티가 비판하는 후설의 현상학은 후설의 정적 현상학인 한편, 후설의 발생적 현상학은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과 근본적인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곳곳에서 ⟪지각의 현상학⟫의 입문과 내용 전반, 방법론을 세심하게 요약하고 있긴 하지만, 후설의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의 구별 및 각 관점에 따른 세부적인 분석들에 대한 입문서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느꼈다. 후설의 정적 현상학은 초월론적 구성을 초시간적 타당성 정초관계의 관점에서 따지는 현상학으로서, 주관의 의식들 가운데서 필증적인 명증의 양상에서 반성될 수 있는 인식의 토대를 찾고, 그 토대에 근거해 다른 의식들의 타당성이 뒷받침되는 시스템을 해명하고자 한다. 반면 후설의 발생적 현상학은 초월론적 구성을 시간적 발생의 정초관계의 관점에서 따지는 현상학으로서, 설령 필증적인 명증의 양상에서 반성되지 않는 의식이라 하더라도--예컨대 '지평'이나 '무의식', '수동적 감각'과 같은 불투명한 인식이더라도--그것이 다른 의식이 발생하기 위한 선행적 조건인 한에서 의식들 사이의 발생적 동기부여 관계를 찾아내고자 한다. 유익했던 내용들을 요약하고, 발생적 현상학에 대한 의문들을 짧게 개진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갈음하고자 한다.


1, 2, 3장

데카르트주의적 성격이 다분한 정적 현상학도 초월론적 주관을 (점적인 자아가 아닌) 현상의 으로 이해하고 있다(67). 

★현상학적 심리학(을 통한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의 의의 "[...] 현상학적 심리학은 주체의 현재적 체험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의식의 심층과거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체험들을 해명할 수 있다 [...] 이처럼 풍부한 체험들을 앞서 분석하고 해명하지 않은 채 초월론적 현상학으로 넘어갈 경우, 그렇게 정립된 초월론적 현상학은 내용이 공허하고 추상적인 초월론적 현상학에 머물 위험을 안고 있다."(75, 강조는 필자)

주도적, 통일적 관심의 개념을 통한 '태도'의 정의(80) /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의 비데카르트적 길에 대한 설명(100-103) / 칸트와 달리 후설의 정적 현상학에서 초월론적 자아는 무수히 많은, 개별적 의식이다(121).

★상호주관성에 대한 존재론적 현상학과 달리 상호주관성에 대한 초월론적 현상학은 타인경험의 본질보다도 타인경험의 가능근거, 가능조건을 추적한다. 상호주관성에 대한 정적 현상학은 상호주관적이기보다 유아론적인 것에 가까운 영역으로의 원초적 환원을 활용해 "[이미 이루어진] 타인경험의 타당성이 문제가 되었을 경우 이성적이며 자율적인 주체들인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그 타당성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해명"하고자 한다(129, 강조는 필자). 한편 상호주관성에 대한 발생적 현상학은 타인경험 역시 경험으로서 "세계지평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수행"된다는 점에 착안해 해당 지평을 나름의 원초적 영역으로 삼아 분석한다(130). "[...] 세계지평에 대한 경험은 타인과의 교섭 속에서 형성된 경험이며, 그러한 점에서 그것은 이미 타인의 경험이 함께 들어와 있는 영역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발생적 현상학적 의미의 원초적인 영역은 언제나 그 어떤 다른 영역보다 더 명증적인 영역이라 할 수 없다."(131)


4장 후설의 정적 현상학과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초월론적 구성이란 초월론적 주관이 질료를 토대로 노에시스로서의 지향성을 통하여 의미로서의 대상인 노에마를 구성하는 과정을 뜻한다. [...] 지향적 체험의 층과 질료로서의 비지향적 체험*은 [...] 모두 체험류에 '내재적'(immanent)이라 불린다. 그러나 [...] 의미로서의 대상은 체험류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 "초월적인 것"(Hua III/1, 228)이다. 말하자면 초월론적 구성이란 구체적으로 체험류에 내재적인 지향적인 체험의 층과 비지향적 체험인 질료[근원]가 합작하여 초월적인 것인 의미로서의 대상 및 세계[파생]를 산출하는 과정을 뜻한다."(143, 강조는 필자) cf. '더 사념함(Mehrmeinung)'으로서의 초월론적 구성 정의 ➔ ⟪현상학과 해석학⟫, 73ff.

*메를로퐁티는 이것이 이미 의미와 지향성을 잉태하고 있다고 보았다(163). "후설은 ⟪이념들⟫ 1권에서 정적 현상학을 전개해 나가면서 객관화적[신체가 아닌 파악작용을 중심으로 한 지적, 지성주의적] 지향성만 포착하였을 뿐 이처럼 객관화적 지향성이 활동하기 이전에 원초적인 차원에서 활동하는 작동하는 [수동적] 지향성은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163) 메를로퐁티의 입장에서 "후설의 정적 현상학에서 제시된 초월론적 주관"은 육화(감각의 수동적 지향성, 세계지평--이남인 선생님의 해석에 따르면 '지향궁'과 근원적으로 유사함--등을 향한 수동적 지향성 등 가지기), 시간성, 상호주관적 연관, 역사 및 세대적 연관을 가지는 것으로 재이해되어야 한다(166-7).

★⟪이념들⟫ 1권에 나타난 초월론적 주관의 한계: ①"필증적 명증의 양상에서 경험될 수 있는 주관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어, 타인의 체험이 배제되고 "각각의 초월론적 주관에게 자신의 체험만이 초월론적 의식으로 규정될 수 있"는 "유아론적 가상"을 보임. ②초월론적 의식의 시간성, 세대성, 역사성을 그것이 "필증적 명증의 양상에서 파악될 수 없는 어두운 지평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분석하지 않음(149-150).

★데카르트적 환원에 대한 이남인 선생님의 고유한 정의: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데카르트적 길을 통한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은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단계는 초월론적 의식들의 흐름으로 귀환하는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그러한 흐름 중 필증적인 명증의 단계에서 파악될 수 있는 초월론적 의식의 영역으로 귀환하는 단계인데**, 이 두 번째 단계가 제5 ⟪데카르트적 성찰⟫에서 선보인 정적 현상학적 의미의 원초적 환원이다."(151, 강조는 필자)

*에서 드러나는 초월론적 의식은 "모두 필증적인 명증의 양상에서 체험될 수 있는 것이 아"님. e.g. 먼 과거의 의식, 타인의 의식 등(156) / **필증적 비판으로서의 원초적 환원 ➔ N.I.Lee (2002)

데카르트적 환원에서도 자연적 태도는 일상적 의미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고 초월론적 구성이라는 새로운 사태를 드러내주는 것이다(154).

"정적 현상학은 발생적 현상학으로는 불가능한 고유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데, 절대적으로 타당한 명증적인 인식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회의주의를 논파하는 일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174, 강조는 필자)


6장 발생적 현상학과 지각의 현상학 (1): 사태와 방법을 중심으로

★발생적 현상학의 탐구영역은 ①지각대상의 구성에서 보다 근원적인 감각적 종합, 본능적 선호 등의 수동적 종합(연상)능동적 종합(이성동기➔Hua VI, 220)키네스테제시간의식(베르나우 원고(1917), C원고(1929-1934)) ⑤세계지평의 구성 그리고 생활세계습성의 발생적 형성과정 ⑦상호주관성, 사회의 구성, ⑧세대와 역사의 구성 등이다(259-263).

다양한 세계들의 구성 과정을 다루는 ⟪이념들⟫ 2권과 인식론적 추상을 통해 지각 종합의 낮은 차원을 탐구하는 ⟪수동적 종합⟫이 발생적 현상학의 초기 저서들이다.

발생적 현상학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초월론적 발생은 다양한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래층 또는 이전 층이 위층 또는 이후 층이 존재할 수 있는 토대 역할을 담당한다"는 "발생의 층에 관한 이론"이다. 예를 들어 수동적 종합은 능동적 종합보다 아래 또는 이전의 층이며, "과거지평 속에서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하나의 습성체계로 형성되어온 것"과 "사회적 지평, 역사적 지평" 모두 초월론적 발생의 가능조건이자 토대다(264-5, 강조는 필자).

초월론적 감성론에 대한 후설의 정의(274) / 제거가 아닌 "사태로의 해방, 진리로의 해방"으로서의 현상학적 환원(294) / 초월론적 주관의 영역으로의 귀환으로서의 환원(295) / ★발생적 현상학 및 실존철학의 방법론으로서의 (데카르트적 길이 아닌) 현상학적 심리학을 통한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297) / "경험에 대한 온전한 소유"에의 (불가능한) 시도로서의 데카르트적 길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해석(306) / 초월론적 의식의 무한성으로 인한 현상학적 심리학을 통한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의 불완전성(310)

"선객관적 세계[지각의 세계]와 관련된 구성적 문제들은, 데카르트적 길을 통한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의 방법이 아니라 현상학적 심리학을 통한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의 방법을 통해서 해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302)
 "그[스미스]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 메를로-퐁티의 '완전한 환원의 불가능성'이라는 명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근본적이며 비인지적이고 선반성적인 불투명한 주체-세계의 관계'에 대한 '완전한 투명한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등을 주장하고 있다."(311)

(현상학적 환원과 구분되는) 발생적 현상학의 방법론으로서 "구성의 발생적 층에 대한 헐어내기[der Abbau, C 6, 1]"(276, 강조는 필자)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헐어내기의 방법이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을 수행한 후 우리에게 개시되는 초월론적 장을 해명하기 위한 방법적 조치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 점과 관련해 초월론적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개시되는 초월론적 장이 고유한 신체의 층, 감각의 층, 사물적 공간의 층, 자연적 세계의 층, 인간적 세계의 층, 대자-존재의 층 등 다양한 발생의 층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쌓아가기(der Aufbau, Hua XV, 590)"는 "가장 원초적인 구성의 층에 도달한 후 [...] 어떻게 그 위에 토대를 두고 있는 층이 발생하는지 해명"하는 방법론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경험과 판단⟫에서의 탐구로, "쌓아가기에서 특히 역점에 두어야 할 부분은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이행할 경우 그러한 이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동기'가 무엇인지 해명하는 일이다."(278, 강조는 필자) 또한 예를 들면 무의식과 같이 "반성을 통해 직접적으로 의식되지 않는 체험들"의 경우 해석의 방법론이 요구된다. 이는 정적 현상학에서는 "포착되는 모든 초월론적 의식[이] 반성하는 의식에 의해 필증적 명증의 양상에서 체험될 수 있"으므로 불필요한 것이다(279).


7장 발생적 현상학과 지각의 현상학 (2): 구체적인 주제분석을 중심으로, 8장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과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가장 근원적인 초월론적 발생의 층인 '근원질료(Urhyle)'"(367) / "본래적인 의미의 실천적 세계의 발생적 전 단계"로서의 감각적 세계(370) / 초월론적 주관들 사이 상호적 공존의 필연성(406) / 실존하는 주관으로서의 초월론적 주관(415) / 인식론적 근원 찾기 vs 심리학적 근원 찾기(423) / 자유와 이성의 동일시(430) / 결정론도 기계론도 아닌  후설의 자유개념(434) / 초월론적 현상학적 관념론 정의(440) / 초월론적 초월세계(449) / 상황론(458)

발생적 현상학과 의식의 불투명성 "발생적인 현상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의식은 투명하게 주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처음이 어딘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불분명한 흐름의 연속체이다. 이러한 흐름의 연속체 중 반성하는 나의 의식을 통해 필증적인 명증의 양상에서 파악될 수 있는 체험은 단지 현재 반성작용을 수행하는 체험과, 동일한 현재 시점에서 존재하는 현전적인 체험뿐이다."(397)

★'유아론적 가상'의 실제성 반박 "상호주관성의 정적 현상학도 초월론적 주관들의 '뒤섞여 있음'을 전제하고 그것을 '타당성의 초시간적 정초관계'의 관점에서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유아론과 무관하다."(408, 강조는 필자)

메를로퐁티와의 근원적인 유사성 "후설 역시 [메를로퐁티와 마찬가지로] 시간적인 발생적 정초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 선반성적 의식으로서의 외적 지각이 반성적 의식으로서의 내적 지각에 선행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자연적 태도에서 출발해 초월론적 태도로 이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418, 강조는 필자) / "[...] 세로지향성[Querintentionalität]은 세계를 향한 지향성, 즉 대상 및 세계에 대한 의식을 뜻하고, 가로지향성[Längsintentionalität]은 파지적 의식을 향한 지향성, 즉 자기의식을 뜻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후설 역시 [...] 대상 및 세계를 향한 의식인 세로지향성과 자기의식인 가로지향성이 분리할 수 없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419, 강조는 필자)

"모든 주관은 자신이 수행하는 어떤 활동에 대해서도 그것이 오직 이성적인 것, 즉 명증적인 것에 토대를 두고 있을 경우에만 그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431)
"정적 현상학은 각각의 대상영역과 관련하여 그 다양한 소여방식과 함께 가장 근원적인, 명증적 소여방식[대상이 언제 가장 명증적으로 주어지는지]을 해명하면서 각각의 대상영역을 탐구하는 학문에 대상을 탐구하기에 적합한 연구방법을 제공해줄 수 있다. 그 이유는 어떤 대상영역을 탐구하기 위한 방법은 이 영역의 본질적 속성을 토대로 규정되어야 하는데, 바로 이 영역의 본질적 속성을 해명함에 있어 그 소여방식은 결정적인 영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453, 강조는 필자) 


발생적 현상학과 관련된 의문들

Q. 어째서 "수동적인 체험들은 정적 현상학이라기보다는 발생적 현상학의 주제"인가?(173) 이는 관점이 아닌 과제의 차이로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가?

A. '필증적 명증의 양상에서 체험될 수 없는 것'을 취급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정적 현상학의 렌즈 하에는 아예 들어오지 않는 사태인 것이다.

Q. '동기'라는 표현은 '발생적 동기'와 동의어인가? '정적 동기'는 가능한가?

Q. 더 상위의 종합 또는 구성을 위해 발생적으로 선행해야 할 요구되는 것으로 주장되는 것들의 시간적 선행성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우리의 신체운동에 대한 의식으로서의 운동감각"이 모든 "감각이 가능하기 위한 전제조건"이자 발생적 동기이며(328), "발생적으로 형성된 총체적인 키네스테제는 모든 개별적인 키네스테제뿐 아니라 키네스테제의 체계들이 작동하기 위한 지평의 역할을 담당한다"(345)는 것, 선경험적 연장성이 경험적 연장성에 선행한다는 것(376)을 어떻게 입증하는가? 또한 모든 작용과 행위에 발생적으로 선행한다는 생활세계적 상황성 및 역사성 등의 지평 또한 결국은 "타당성의 지평"이라면(Hua XXXIX, 543), 그것이 현행적 작용 및 행위와 함께 동시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적으로 선행한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하는가?

Q. 감각의 정체와 관련하여 ⟪이념들⟫ 2권에서는 1권과 달리 감각내용-파악작용의 도식을 파괴하고 있다면 어째서 두 책은 서로 비일관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