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의 독서
1. Nikhil Krishnan, A Terribly Serious Adventure: Philosophy and War at Oxford 1900-60, Random House, 2023.
오늘날 '분석철학'이라 불리는 전통을 개시하고 탄탄하게 정비한 철학자들--Moore, Wittgenstein, Ayer, Ryle, Austin, Anscombe, (arguably) Murdoch, Williams, Strawson etc.--이 몸담았던 옥스포드 대학에서 20세기 전반에 철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개괄하는 역사서이다. 저자 자신이 전공자여서 그런지 철학적인 내용도 상당히 깊이 있고, 무엇보다 끝장나게 재미있다. 헤겔 식 관념론과 불가해한 형이상학에 맞서, 각 철학적 개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며, 일상적인 소통과 언어 사용에서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철학적 풍토가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철학이 사변의 무게에 압사 당해선 안 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지적인 게임이나 토론 놀이에 그쳐선 안 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문제는 언어의 사용 방식에 지나치게 집중해서만 사태를 규정하고자 할 경우, (언젠가 한 동료 분께서 지리멸렬하다고 꼬집으셨던) 저마다의 직관 싸움이 될 확률이 무척 높다는 것이다. 경쾌함과 깊이를 모두 갖추기란 어려운데, 위에 나열된 학자들은 경쾌한 깊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같다. 오늘날의 분석철학-대륙철학 스플릿에 상당히, 상당히 회의적인 사람으로서 1월 내내 가슴 설레여 가며 읽었다.
2. 오카다 타카시, 유인경 옮김, 장근영 감수, ⟪나만 모르는 내 성격: 성격장애, 어떻게 함께 지내고 어떻게 극복하나⟫, 모멘토, 2006.
한철 지난 DSM-IV에 의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성격장애를 아주 쉽게 소개해주는 책이다. 헌책방에서 찾아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그 자리에서 첫 챕터를 다 읽어버리고 집으로 사가지고 왔다.
우리는 흔히 성격을 한 사람의 존재와 연결 지어 생각한다. 성격이란 이를테면 옷차림이나, 심지어는 직장 같은 것과도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옷차림이나 직장은 일반적으로 달리 선택이 가능하기에, 사람의 존재를 구성함에 있어 필연적인 요소가 아니다. 달리 말해 옷차림이나 직장은 그 존재론적인 우연성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의 존재에 부착되거나 그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가능한 무엇이다. 그러나 성격은 한 사람의 영혼과 동일시될 수 있을 정도로 고착화된 존재 자체의 패턴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격장애'라는 범주는, 어떤 의미에서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병적이라 규정함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존재는 언제 질병이 되는 걸까?
정확히 말하면 무엇이, 또는 누가 존재의 건강함과 그렇지 못함을 결정하는가? 쉽게는 환자 자신의 고통이라 대답할 수 있겠지만, 이를테면 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는 (제 능력의 현실적 한계와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않는 한) 정작 본인은 상당히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만족스럽게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흔히 싸이코패스라고도 불리는 반사회적 성격장애 환자 역시, 양심의 가책이나 사회적 제재에 대한 두려움을 몰라 유의미하게 낮은 불안 그리고 스트레스 수준을 향유한다. 이 쾌활한 자들의 성격을 질병으로 낙인 찍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인간성의 규범이라는 것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서로를 상처 주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행해야 마땅한 무엇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규범성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적어도 대화만으로는 우리만의 '건강한' 삶을 설득할 수 없다. 마치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가 칼리클레스를 설득하지 못했듯.
3. 제임스 팰런, 김미선 옮김, ⟪싸이코패스 뇌과학자⟫, 더퀘스트, 2020.
기회가 된다면 따로 정리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 역시 끝장나게 재미있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a) 유전자, 신경전달물질, 뇌의 물리적인 구조, (b) 후성유전학적(epigenetic) 요인들, (c) 생애 내 (특히 생애 초기) 스트레스 경험 모두에 의거해 종합적으로 결정된다. 싸이코패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c)에 해당하는 어린시절의 학대만으로는 싸이코패시가 성립하기 어려우며, 결국 싸이코패스는 싸이코패스로서 태어나는 셈이 된다. (반대로 저자의 경우처럼 (a), (b)를 만족해도 (c) 없이는 싸이코패시가 성립하지 않지만.)
그런데 우리는 보통 우리가 타고나지 않은 것, 그리하여 소위 자유의지에 의거해 선택한 것에 대해서만 도덕적인 탓(blame)을 귀속시키는, 말하자면 통제 원칙(control principle)을 육화하는 채 살아간다. 본인이 통제할 수도 없었던 행위에 대해 처벌함은 억울하고 불공정하게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싸이코패스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인 경멸과 공포, 그리고 상당한 처벌 욕구는 어떻게 합리화될 수 있는 걸까.
철학자로서 내가 궁극적으로 관심이 있는 주제는 정의와 자비 사이의 조화다. 전자는 정당화라는 작용을 통해 체험되는 권역이고, 후자는 이해라는 작용을 통해 체험되는 권역이라 생각하고 있다. 자비롭게 생각한다면 모든 인간 행동이 이해가 되지만, 정의를 생각한다면 모든 인간 행동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싸이코패시는 안셀무스 때부터 철학사를 괴롭혀왔던 이 간극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현상 가운데 하나다.
4. 김채원, <겨울의 환>, ⟪1989년 제1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문학사상, 1999.
오늘날의 한국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실과의 끈질긴 밀착과 깊은 애증 관계를 그려내는 소설이었다. 1990년대 즈음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사랑한다. 그들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여성주의, 지적 도취가 아닌 사상, 말초적인 쾌락과 무관한 에피쿠로스주의를 안다.
5. Bernard Williams, Ethics and the Limits of Philosophy, Routledge, 2011 (first published in 1985).
마음 잡고 요약문을 준비하고 있다. 과제 때문일지 연구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리된 철학 글을 찾아 내 블로그를 꾸준히 방문해주시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제목 그대로, 일반성(generality)을 겨냥하며--즉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태들을 아우르는 어떤 일반적 설명을 추구하며--그것도 논증의 형태로 그렇게 하는(argumentative) 학문으로서 철학이 윤리라는 사태에 접근하는 데 어떤 의미에서 부적합한지 주장하는 책이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철학과 동료 둘과 함께 읽고 있는데, 두 사람을 일주일에 한 번 온라인으로 만나는 일이 당장 백수인 내게 일상 속에서 정말 큰 기쁨이 된다. 분석철학을 잘 모르는 나를 믿어주고, 나의 질문들에 참을성 있게 대답해주는 두 친구들이 너무 좋다. (참, ELP에서 주장되는 실천적 숙고의 근본적(radical) 1인칭성과 관련이 되는 논문인 Internal Reasons도 읽었다. 집 앞에 '검은 개'란 이름의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