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5 어김없는 불청객
블로그라는 게 원래 이러라고 만들어진 공간이라 생각하며 오랜만에 두서없는 넋두리를 하려 한다.
PMS가 찾아왔다. 이유 없이 다시금 모든 게 무서워졌다. 나 자신의 유약함, 자비 없이 사람을 내치고 도태시키는 세계, 그처럼 무자비한 세상과조차 커넥션을 잃어버렸다는 쓸쓸한 감정에 휩싸여서 이 글을 쓴다. 생리 전 일주일 정도는 도대체가 불합리적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내 미래의 전방위적 몰락에 대한 관념을 쉽사리 떨칠 수 없다. 운 좋게 가부장제의 억압 같은 것은 모르고 자랐지만, 한 달에 한 번씩 나를 엄습하는 이 괴물 같은 불안 덕분에 여성됨의 고통은 충분히 알고 지낸다. 원래는 식욕이 폭발하곤 했는데, 요새는 무엇을 먹든 젓가락 들고 숟가락 뜨는 행위 자체가 귀찮다. 긴 잠을 자는 것으로 육화에 따르는 불편감을 억누른다. 오늘도 오후 다섯 시가 돼서야 몸을 일으켜세웠다. 이렇게 불규칙하게 살아도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데 감사하면서도, 유튜브 피드에 올라오는 국가대표들의 착실한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지고, 역설적으로 의욕을 잃어 다시 눈이 감긴다.
눈을 감으면 고등학교 때 내신 시험 치던 꿈을 꾼다.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끔찍한 정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꿈이다. 경쟁에 경쟁에 또 경쟁. 승리자마저 패배하는 시스템.
오늘 나는 몇 쪽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몇 줄의 논증을 구성할 수 있을까?
한국에 온 지 벌써 두 달째인데, 얼굴을 보기로 해놓고 만나지 못한 친구들이 많다. 애인과도 시간을 최대한 많이 보내고 싶고, 부모님과도 얼굴을 맞대고 하하호호 하고 싶고, 내 공부도 포기하기 싫다 보니 밸런스를 맞추기가 어렵다. 내일만 해도 철학과 사람들이 단체로 유학 가는 친구들을 위한 송별회를 연다고 들었는데, 잠깐 얼굴이라도 비추고 싶다가도 (마음으로는 이미 케이크도 사고 꽃도 사고 편지도 썼다...) 이런저런 일정과 다른 커미트먼트들을 떠올리면 생각만으로도 원래도 부족했던 HP가 뚝뚝 떨어지고 만다. 어떻게 생각하면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은 애정을 쏟은 공동체에조차 소홀한 것 같아 나 자신의 무심함에 속상해진다. 스터디카페와 피아노 학원도 결제해놓고 못 나가고 있고... 운동 못하고 지내는 것은 언제부턴가 너무 당연하고...
그래도 꾸준히 내가 나의 사적인 사명이라 생각하는 문제들을 붙잡고 산다. 오랫동안 읽고 싶었던 보부아르의 철학서를 그제쯤 펼쳐 읽기 시작했다. 사르트르와 형이상학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훨씬 밝은 세계관을 갖고 있는 철학자다. 보부아르의 철학을 읽을 때는 사르트르와의 차별점을, 보부아르의 소설을 읽을 때는 그녀의 철학과의 차별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사성이 아니라 차이에 예민해야 한다.
이런 느릿느릿한 학습들이 모여 언젠가 나에게 나만의 내면이라는 것이 부디 형성되기를. 그 속에 소위 성과만큼이나 체념, 피로의 자리도 만들어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