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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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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이슬라> 김성중, ⟪이슬라⟫, 현대문학, 2018 수려한 한국어로 된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기분이었다. 학교로 가는 지하철에서부터 읽기 시작해, 결국 해야 하는 과제들을 제쳐두고 하루만에 끝까지 읽어내고 말았다. 그만큼 이야기가 나를 매료시켰고 몰입도가 강했다. 몇 달만에 집어든, 그만큼 마음을 굳게 다진 뒤에 꺼내든 한국 소설이었는데, 용기를 내길 정말 잘했다고 느낀다. 김성중 소설가의 작품은 사실 단편소설 '쿠문'과 '정상인'을 읽어본 것이 전부였다. 그 둘은 너무 다른 내용과 주제의식을 담고 있었기에 이 작가가 소화할 수 있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인가, 불현듯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젊은 나이 탓인지 내 마음에 더 든 쪽은 환상적 요소가 강했던 '쿠문'이었는데, ⟪이슬라⟫는 감사하게도(?) '쿠..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 작가정신, 2020 당분간은 수필이나 산문집을 읽어보려 하고 있다.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을 특별히 고른 이유는 그녀가 쓴 거의 모든 글에서 따스한 마음씨가 묻어나온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사람의 약함을, 정확히 말하면 연약함을 이해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내면들의 어둠을 꼼꼼하게 묘사하면서도 비난하지 않고, 일상의 고통을 당연한 것이 아닌 고투와도 같은 것으로서 충분히 인정해준다. 이 산문집은 여러 편의 소설, 시, 동화 등을 각각 특정한 종류의 베이커리와 엮어내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백수린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친절한 문체로 넓은 문학의 토양이 안내되어있다. 왠지 모르게 나는 한국문학으로부터 감탄하는 마음이나 의분을 느꼈으면 느꼈지 ‘위로’를 받는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산..
이제니,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제니, , 문학과 지성사, 2019, 모든 강조는 필자. 읽는 데 정말 오래 걸렸다. 이건 시집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고 시 하나 하나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하나의 시 내에서도 여러 이미지와 메시지가 교차하는, 한 마디로 묵직한, 밀도 높은 시들이었다. 이제니 시인이 시어들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방식은 참 독특하다. 내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기표들 사이의 유사성에 의존해 기의를 창출시키는 기법이었다. 말소리가 서로 비슷한 단어들을 늘어놓음으로써, 마치 그 표면적인 비슷함 너머로 의미상의 진정한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문장들을 꾸며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무수하다. "열리고 열리는 여리고 어린 삶"(21, 중에서)이라든지, "완고한 완만함으로 나아가는 흐름이 있다"(52, )라든지, ..
강성은, <Lo-fi> 강성은, , 문학과지성사, 2018 예전에 보안서점에서 제목과 두께만 보고 구매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독한 시집이다. 직설적이고 의도적으로 투박한 듯한 언어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1달에 1권의 시집을 완독하는 삶'이라는 관념을 떠올리게 해준 책이라 감사하기만 하다. 그 외의 시간엔 무엇을 했든, 얼마나 무기력하게 살았고 어떻게 스스로를 헐뜯으며 지냈든 간에 1달에 1권의 시집은 완독했으므로 죽기 직전 한 가지의 긍지는 가지고 눈 감을 수 있는 삶의 이미지. 꼭 시집이 아니더라도 소설, 영화, 철학... 무엇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밭을 최대한 단조롭게 경작하되 펜 끝은 화려하게 남겨두었던 중세의 필사가들을 연상시키는 활동이기만 하면 된다. 나는 지금 정신을 수련하는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유주, <연대기> 한유주, , 문학과 지성사, 2018 어떤 것이, 누군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다시 말해,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우선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란 서글픈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투명한 인간이 아닌 이상 존재는 존재만으로 쉽게 증명되기 때문이다. 존재는 증명되기 위해 자신 이외의 다른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유주의 인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신하고 타인에게도 그 당연한 것을 인정 받기 위해 분투한다. 나아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재에 대해서도, 그것을 확정하고 구체화하며 충분히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상실을 애도하려고도 한다. "나는 있다. 내가 있다(, 157)" 또는 "네가 있다[또는, 있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이 소..
미셸 우엘벡, <소립자> 미셸 우엘벡, , 열린 책들, 2003 인류는 자신의 발전의 최정점에 이르러 가장 동물적이 된다는 통찰이 담긴 책이다. 우엘벡은 분자생물학자 미셸과 불문학 교사 브뤼노 형제의 인생사를 통해 "서구 사회의 마지막 신화인 섹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반드시 해야 할 일(179)"에 대한 전사회적 집착이 낳는 개인의 고립 양상을 기술한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면 누구든 원하는 방식대로의 섹스가 가능한 클럽이나 자연주의 공동체를 빙자한 섹스 테마파크(적어도 우엘벡의 시선에서는 이렇다)에 대한 가감 없는 묘사가 이 기술을 솔직하다 못해 즉물적으로 만든다. 그 즉물성은 68혁명을 비롯한 여러 투쟁을 통해 얻어진 '성적 해방'과 개인적 자유의 극대화가 가지는 귀결들에 대한 우엘벡의 비판적인, 정..
백수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전체에 대해: 2020년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 읽었다. 을 좋게 읽었었는데 이번에도 사랑이라는 폭력적일 수도, 달콤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여성 인물의 내면을 꼼꼼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는 인상이다. 주인공 희주는 둘째 아이를 가진 뒤엔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주부이다. 희주의 욕망은 가족의 테두리를 허물지 않는 선 내로 통제된다. 그녀는 "붉은 지붕의 집(11)"에 사는 삶을 공상하며 그 속에서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바비큐를 먹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이 곧 그 선을 유지하고 수호하는, 심지어는 강화하는 허락된--고로 통제된--욕망의 예다. 그 붉은 지붕의 집이 허물어지고 있을 때 비로소, 집의 골격만 남은 그 터 위에서 희주는 근육질의 인부를 향해 허락받지 않은 자유로..
토마스 베른하르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2014 2018년 여름에 를 우연히 읽은 이후 1년에 1번씩은 베른하르트의 소설을 찾게 된다. 작년엔 빈을 여행하면서 일부러 을 가져갔고(여행 내내 나를 행복하게 해준 예술가들에 대한 냉소로 가득찬 책이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올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배수아가 옮긴 를 종강하자마자 읽었다. 베른하르트의 소설들은 분위기나 문제의식, 문체 면에서 서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슷하다. 사태의 어둠만을 보는 극단적으로 절망적인 관점이 모든 작품을 관통하며, 실존하는 인물 또는 집단에 대해 어떻게 이런 깡이 있을 수 있지 싶은 수준으로 그 정신적 타락을 비판하고, 문단의 구분도 서사도 없이 사건의 발생 순서를 왔다갔다 하며 당당하게 헤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