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77)
알베르 카뮈, <최초의 인간>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우다영, <북해에서> 우다영, ⟪북해에서⟫, 현대문학, 2021. 삶은 지배욕과 연민 사이의 끝없는 긴장이다. 우리는 보복하고 통제하고 나 홀로 고양되고자 할 수도 있고, 받아들이고 내버려두고 그저 서로에게 스미고자 할 수도 있다. 성스러운 것은 후자지만 동시에 위험한 것도 후자다. 안전한 것은 전자지만 동시에 저열한 것도 전자다. 저열하게 스스로를 보존할 것인가. 위험하게 자신을 내어줄 것인가. 선택은 당장의, 미래가 불확실한 삶에 얼마나 그리고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달려있다. 정답이 없음을 알기에 누구를 비난하기도 어렵다. 우리는 언제고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북해의 왕이 아니니까. 다만 좁은 시야로 현재를 견디고 현재들을 견디다 죽어버리는 유한자니까. 그래서 책을 덮고 남은 질문은 “어쩌지,” 이것이었다.
하설, <아날로그 블루> 하설, ⟪아날로그 블루⟫, 별닻, 2021(독립출판) "그렇기에 소망한다. 몇천 년의 시간이 지나 누군가가 나를 보아 주면 좋겠다고. 평생을 괴로워하다 간신히 남은 내 뼛조각을, 혹은 내 공간을 보고 욕을 해도 좋고 비난해도 좋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좋으니. 그저 오랜 시간이 지나 작은 공간으로 남을 내 부피를 보고, 내 삶이 지고 갔던 몸집 큰 괴로움을 상상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112, '고백의 형상') 실제로 만나보기도 전에, 서로가 소설을 쓰고 싶어 하고 쓰고 있다는 사실부터 알았던 우리. 2016년에 처음 인사를 해서 햇수로 7년째 인연을 이어오게 되었네. 그동안 정말 많은 글을 쓰고 고치고, 버리고 응모하고, 어리숙하게나마 책으로 엮기도 해보았다. 이마를 맞대고 합평..
신종원, <전자시대의 아리아> 신종원, ⟪전자시대의 아리아⟫, 문학과지성사,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k32dMyHTnUE 음악은 특정한 규칙을 가지거나 가지지 않는 파동이다. 파동에 불과하다. 따라서 음악은 반드시 아름다울 필요도 없고, 비음악적 소음, 이를테면 이명 같은 것과 질적으로 구분될 이유가 없다. 심지어는 인간의 존재함 자체가 필연적으로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음악의 일종이다. 비음악인 줄 알았던 우리가 음악일 수밖에 없다. 음악으로 살고 음악으로 파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음악인 한에서, 우리는 모두 녹음기이거나 스피커인 기계-인간이며 단조이거나 장조이거나 무조일 뿐 인격도 성별도 사실 무차별하다. 보르헤스를 연상시키는 섬세하고 무시무시한 개성의 탄생. 세련된 문체가..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정명희 옮김, ⟪댈러웨이 부인⟫, 솔, 2019. "런던은 스미스라 불리는 수백만의 젊은 청년들을 삼켜버렸다. 부모가 그들을 특색 있게 하려고 생각해냈던 셉티머스 같은 별난 그리스도 교도다운 이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유스톤 거리에서 떨어진 곳에서 하숙하면서 핑크색의 순진한 타원형 얼굴이 마르고 찌푸린 적개심에 가득 찬 얼굴로 변하는 것 같은 경험들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가장 빈틈없는 친구라도 정원사가 아침에 온실 문을 열고 화초에 새로 핀 꽃을 발견하고는 하는 말 외에 할 수 있는 말이 또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꽃이 피었어. 허영, 야심, 이상주의, 열정, 외로움, 용기, 게으름 따위의 평범한 씨앗들에서 꽃이 피었단 말이야.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유스톤 ..
우다영,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우다영,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문학과 지성사, 2020. "세계는 아직 눌리지 않은 건반 같은 거야. 곡의 진행 안에 눌리는 횟수와 순간이 정해져 있어."(, 143)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을 지배하는 소재는 단연 물이다. 아이는 영화의 세트장인줄 알면서도 귀신이 보인다며 강물에 들어가길 망설이고(), 즐거워야 할 물놀이는 세쌍둥이의 맏이를 집어삼킨다(). 결혼식과 장례식이 동시에 펼쳐지고(), 불륜의 죄의식은 호텔 수영장 표면 위로 아른거리는 현무암의 이미지에 집약된다(). 마지막으로, 소설 전체를 통틀어 나에게는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이자 문자 그대로 소설집의 마지막 토막인데, 해파리들이 다이버들의 이마 위로 달라붙으면서 인간이 아마 심해어였을 시절부터 은밀하게 정착되어온 사람의 본래..
이심지, <오래된 습관> 이심지, ⟪오래된 습관⟫, 2021(독립출판). 자신이 살아가는 일을 주제로 픽션이 아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또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만 해도 블로그라는 사적인 공간에조차 일기를 자주 쓰지 못한다. 쓰던 중간에 지운 일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이미 게시한 일기를 하트 표시를 눌러준 친구들의 마음을 지나쳐버리면서까지 삭제하곤 한다. 왜 그럴까, 곰곰이 따져보면 어떤 두려움이 작동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일상과 머릿속을, 허구로 승화시키거나 적어도 다른 텍스트를 경유하는 일 없이 내보였다가 괜히 내 앎의 얄팍함과 마음의 차가움 따위를 들켜버릴까 봐 두렵다. 자기표현은 객관적으로 가치있는 행위라고 믿으려 하지만, 막상 내 빈곤한 주관성과 관련지어 생각하기 시작하면 믿음이 숨바꼭질을 해..
엘프리데 옐리네크, <욕망> 엘프리데 옐리네크, 정민영 옮김, ⟪욕망⟫, 문학사상, 2006. "아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 아이는 백인이지만 햇볕에 구릿빛으로 그을렸다. 저녁 때 엄마는 아이를 씻길 것이고 아이를 위해 기도할 것이며 아이의 시중을 들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에게 매달려 아버지가 엄마의 굴속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한 벌로 그녀의 젖꼭지를 깨물 것이다. 듣고 있는가? 이것 자체가 언어고 그 언어는 할 이야기가 있다."(35, 강조는 필자) 읽기가 정말 힘든 책이다. 그런데 이 어려움은 ⟪욕망⟫의 순전히 부수적인 속성이 아니라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움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성에 대한 묘사가 노골적이며 무엇보다 잔인하다. 마을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자기 휘하에 둔 채 언제든, 누구든 해고할 수 있는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