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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Marquis de Sade), <미덕의 불운> 사드(Marquis de Sade), ⟪미덕의 불운⟫, 열린책들, 2011 '사디즘'이란 말의 원류가 된 사드 후작의 소설들을 한 번쯤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왔고, 마침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번역된 판본이 있기에 구매했다. ⟪미덕의 불운⟫은 온갖 술수로 백작부인이 된 언니 쥘리에뜨와 달리 정직함과 자상함,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 타인을 해치지 않고자 하는 마음, 은혜 입은 사람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등 거의 모든 미덕을 갖춘 동생 쥐스띤느가 미덕을 발휘할 때마다 바로 그 미덕을 이유로 매번 새롭고 보다 잔인해지는 불운들을 끊임없이 맞이하는 이야기다. 소설은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어, 쥐스띤느가 아직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언니 쥘리에뜨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20210506 기도와 작약 연구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데 문득 너무나 갑갑하고 부자유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덧 내 머릿속은 온갖 비관적인 시나리오들과 잠재적 갈등들로 가득 차올랐다. 이유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테라스로 나가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꽤 오랜 시간 기도를 드렸다. 우선 저의 모든 비관을 멈춰주시고, 어떤 경로로든 내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해달라고. 매 순간 최선의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고, 어떤 불행 가운데서도 나의 버팀목이 되어줄 선함과 희망을 달라고.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부탁을 드렸다. 눈을 뜨니 나뭇잎들이 단박에 내 좁은 시야를 메웠다. 벌써 단풍이 돋은 나무가 있었고, 앞으로도 청록빛을 간직할 소나무도 보였으며, 초여름을 맞이하는 푸르른 잎들이 잔잔한 바람에 흔..
하인리히 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홍성광 옮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Und Sagte Kein Einziges Wort)⟫, 열린 책들, 2011. 1952년, 가난한 중년 부부의 하룻밤. 독일의. 흔히 사랑은 명랑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표상된다. 무엇보다도 삶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감정으로서 꿈꾸어진다. 그러나 사랑이 가난과 만나면 도리어 절망의 근원이 된다. 프레드 보그너와 캐테 보그너는 서로를 끔찍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그들은 단칸방에서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다가,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하자 별거를 감행한다. 프레드가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노동에 지쳐 집에서라도 휴식을 취하려 하지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을 때리자마자 죄책감에 시달려 그들이 우..
김구, <백범일지> 상편 김구 지음, 이윤갑 주해, ⟪백범일지⟫ 상편,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0 아주 우연한 기회에, 별다른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아서 리뷰를 남기기로 했다. 김구--왠지 그는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지만--의 ⟪백범일지⟫ 상편은 1928년에서 1929년까지, 그가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있을 때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는 두 아들들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들려주기 위해 쓰인 책이다.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유서를 대하는 기분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자서전인지라 요약 같은 것을 하기도 부적절하고, 다만 내가 느꼈던 바들을 짤막하고 자유롭게 끄적이련다. 1. 김구는 어린시절부터 대범하고 의로운 성격을 품었으며 그것을 평생..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요약 및 논평 미셸 푸코, 이상길 옮김, ⟪헤테로토피아⟫, 문학과지성사, 2014 공간에 대한 푸코의 짤막한 사유들을 조각조각 모아놓은 책이다. 작년 9월 나는 절망에 빠져있었고, 절실한 마음으로 서촌에 나가 보안서점에서 구매했는데 이래저래 정신이 없어서 이제 와서야 펼쳐봤다. (한참 니체를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느낀 탓도 있다.) 이 책에는 '헤테로토피아', '유토피아적인 몸', 그리고 '헤테로토피아'의 정제된 판본 격인 '다른 공간들' 등이 실려있다. '유토피아적인 몸'은 우리의 몸은 그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장소이며, 그곳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모든 유토피아적인 공상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몸이 세상의 중심으로서 그 자체가 유토피아라는 안티테제, 그러니..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선악의 저편(Jenseits von Gut und Böse)⟫, 아카넷, 2018 파죽지세의 작가, 성실한 역자, 깔끔한 내지 디자인의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완벽한 철학서. ⟪비극의 탄생⟫의 창의적이지만 장황한 성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감동적이지만 암호와 같은 성질, ⟪우상의 황혼⟫의 가독성 좋지만 산만한 성질, ⟪이 사람을 보라⟫의 재미있지만 난잡한 성질이 ⟪선악의 저편⟫에는 없다. ⟪선악의 저편⟫은 내가 읽어본 니체의 저작 가운데서 가장 명료한 논지와 서술을 갖춘 책이다. 그의 핵심적인 사상들이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되어있기 때문에, 비록 1886년이라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저술되었기는 하지만 니체 이전의 철학사에 익숙하기만 하다면 니체 입문서로 제격인..
Oh my love,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2018.4) ⟪화실⟫이란 장편소설을 쓰기 전--제 1회 박상륭 문학상에 호기롭게 응모했다가 심사평도 받지 못하고 탈락했지만, 언젠가 다시 제대로 써내서 세상에 내보일 것이다--그 이야기를 아주 막연하게만 예감하면서 자유롭게 써내려갔던 소품이다. 낙성대역의 바에서 처음으로 마셔봤던 위스키 맛을 열심히 기억하고 있다가, 대학동 고시촌의 어느 카페에서 늦은 저녁시간에 끄적였었다. 영감의 원천이 됐던 노래를 첨부한다. 과거의 내 딱딱한 문체와 유치한 표현들은 지금 봐서는 견딜 수 없다. 그래도 그때 나름의 정취가 담겨있으니 최대한 내버려두었다. www.youtube.com/watch?v=u3QZVdqUidw 밤을 꼬박 새우고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취기를 내 안에서 쫓아내려 몸부림쳤다. 몸부림이라고 해봤자 날 집으로 돌아가게..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비판적 단상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