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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김구, <백범일지> 상편

김구 지음, 이윤갑 주해, ⟪백범일지⟫ 상편, 계명대학교 출판부, 2010

 아주 우연한 기회에, 별다른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아서 리뷰를 남기기로 했다. 김구--왠지 그는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지만--의 ⟪백범일지⟫ 상편은 1928년에서 1929년까지, 그가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있을 때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는 두 아들들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들려주기 위해 쓰인 책이다.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유서를 대하는 기분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자서전인지라 요약 같은 것을 하기도 부적절하고, 다만 내가 느꼈던 바들을 짤막하고 자유롭게 끄적이련다.

 1. 김구는 어린시절부터 대범하고 의로운 성격을 품었으며 그것을 평생 유지한 것 같다. 학구열도 뛰어나서, 아마 난세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과거시험에 응시해 조선의 관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가 1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아기 접주'라고 불리며 천도교 포교에 앞장서고 동학농민운동에도 지휘관으로서 가담했다는 사실, 나중에는 서양 문화에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는 사실은 몰랐었는데 이 참에 알게 됐다. 김구가 개인적으로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거나, 그 시절엔 철학과 종교가 칼같이 구분되지 않고 모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배움 체계로 여겨지지 않았나 싶다.

 2. "[...] 성현을 목표로 하고 성현의 자취를 밟으라 [...] 이렇게 힘써 가노라면 성현의 경지에 달하는 자도 있고, 못 미치는 자도 있다. 이왕 그대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될 뜻을 가졌으니 몇 번 길을 잘못 들더라도 본심만 변하지 말고 고치고 또 고치고, 나아가고 또 나아가면 목적에 도달할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괴로워하지 말고 행하기만 힘쓰라.(61, 강조는 필자)" 김구가 스승으로 모신 고산림이라는 유학자의 말이었는데 마치 스토아주의자들의 교설을 듣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지고 위로를 받았다.

 김구는 인천 감옥에서 서양 서적을 접하면서 타국의 문물에 대해서도 배울 것은 배우자는 식으로 마음을 여는 반면--"의리는 유학자들에게 배우고, 문화와 제도 일체는 세계 각국에서 채택하여 적용하는 것이 국가의 복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107)."--그의 스승 고산림은 끝까지 척왜척양의 정신을 고수한다. 이에 대해 김구가 선생과 자신이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다. (너무 다른 맥락이지만, 언젠가 혼전동거에 대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을 때 나도 똑같은 것을 느꼈었다.)

 3. 김구가 인천 감옥의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소장을 대신 써주는 한편 죄수들은 김구에게 온갖 노래를 가르쳐주는 대목이 있었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만 같아 같은 페이지(109)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또 김구가 신교육을 전수하는 학교를 세우자 동네 서당의 훈장이 학교에 방화를 저지른 사건 역시 여운이 길었다. "그[방화범]를 고발하지 않고 조용히 마을을 떠날 것을 명하였다"는 김구의 말에서 그의 단호함과 자비로움을 동시에 느꼈다(145).

 4. 김구의 호인 '백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도 전부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그의 바람이 담겨있는 이름이다(182). '애국심'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접촉하는 감정의 명칭이었다. 평화의 시기에는 애국심이 오히려 나라의 부패에 대한 무지의 소산인 것처럼 여겨진다. 정치와 사회구조에 대한 환멸로 '이게 나라냐'라는 표현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다. 그러나 전쟁의 시기에는 그와 같지 않을 것이다. 작은 전쟁이라 할 법한 올림픽, 월드컵 때만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한 데 뭉친다. 이처럼 우리들을 뭉쳐주는 것은 '한국인'이라는 공통의 국적, 일종의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전국 각지의 모든 한국인을 공통적으로 묶어줄 만한 '내용'을 발견하기는 너무 어려워졌다는 것이 현대 한국사회에 대한 나의 진단이기 때문이다. ('국룰'이라는 유행어를 내가 늘 낯설고 실체 없는 것으로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의 고속성장과, 인터넷 문화의 과도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발달로 인해 우리나라 사회는 세계화의 폭풍 한가운데 서 있다. 요컨대 백년 남짓만에 한국인은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같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가치관, 재산, 이념, 취향, 삶 일반의 내용간의 차이가 너무 커졌다. 이런 때에 만일 정말로 진짜 전쟁이 발발한다면, 저 형식에 대한 애정이 한시적인 통합을 넘어서 조선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조국만을 위한 대의를 품은 위인들과 의병과 같은 자발적 집단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안락한 활자질에만 익숙한 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 것이며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 ⟪백범일지⟫를 눈앞에 두고 지나치게 추상적인 잡념만을 늘어놓는 것만 같아 조금 부끄럽지만, 멈출 수 없는 생각.

 5. 철학도인 나에게는 맨 뒤에 실린 ⟪나의 소원⟫이 가장 흥미로웠다. ⟪나의 소원⟫은 1947년에 쓰인 김구의 정치사상의 강령들로, 다음의 네 가지 주요 명제들을 내용으로 가지고 있다.

 첫째, 사상은 가변적인 것이지만 민족은 변하지 않는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200)." 김구는 민족을 견고한 경계를 가지는 하나로 통일시키면서 우리만의 문화를 발전시키되, 외국의 좋은 문화와 건설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미래를 모색한다.

 나는 정치학에 무지해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지성사적 맥락에서 어떤 집단을 지칭해왔는지 잘 모르고, 김구가 저 당시 '민족'이라고 표현한 것의 지시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어렴풋한 감각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 어렴풋한 감각이 맞아떨어져서, 만일 '피로 이어져있고 오랜 시간 삶의 터전을 공유해왔다'는 사실만으로 민족성이 성립하는 것이라면... 가장 직접적인 혈연관계인 가족의 개념조차 재사유되고 있으며, 이민이나 장기여행 등이 빈번할 뿐 아니라 특정한 외국에 대한 동경이 일종의 개인적 취향으로 여겨지는 오늘날에는 민족 개념을 중심으로 나라를 경영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북한의 주민까지 나아가지 않고 설사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것으로 사유의 주제를 제한하더라도 그렇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상술한 대로 이 좁은 나라 안에서도 사람들의 삶 사이에 공통점이 너무 적어졌다는 것이다. ('민족'이라는 표현 자체가 낡은 것으로 느껴지는 건 나만의 직관인가?)

 둘째, 개인의 이기심만을 추동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도, 국민 대다수의 자유를 박탈하는 사회주의적 계급독재도 승인할 수 없다. "[...] 어느 한 학설을 표준으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204-5)." 이어서 그는 삼림의 비유를 들며 종교와 철학의 자유 및 다양성을 옹호한다.

 셋째, 우리나라 고유의 힘을 계발함에 있어 가장 요구되는 것은 바로 문화와 교육이다. 이 연장선에서 그는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고, "사랑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는 나라가 되도록"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교육은 파편적인 지식의 습득 활동으로 표상되지만, 진정한 교육이란 사실 김구의 말대로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 그것도 사랑의 덕과 법의 질서에 대해 사유하고 실천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207). 둘째와 셋째 강령에 대해서는 조금의 이견도 없다.

 넷째, 공통의 적이 물러난 이후에는 나라 안의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니와, 적은 이미 물러 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209)." 김구의 문장을 읽고 남한과 북한 사이의 화합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힘 사이의 화합이 먼저 떠올랐다. 깊게 고민해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장기적으로는 통일에 찬성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고, 남한과 북한 사이에 평화가 도래한다면 이해관계가 달리 얽힌 사람들을 제하면 그 누가 싫어하겠냐만은, 일단 우리 안의 불화부터 어떻게 좀 해결됐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정치 뉴스라면 어쩔 수 없이 바람에 실려오는 것들조차도 듣기가 싫다.


 ⟪헤테로토피아⟫ 리뷰에서도 썼지만, 망중한의 시기라 코스웍과 무관한 책들을 들춰볼 여유가 좀 생겼다. 드디어 이름만 들어봤던 하인리히 뵐과 조셉 콘래드를 읽을 수 있게 됐다. 뵐은 197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콘래드는 이탈로 칼비노가 학사였나 박사 논문으로--둘은 너무 다른데!--다룬 작가인데, 폴란드인인데도 20대가 돼서야 배운 영어로만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처럼(?) 나는 앞으로도 현대문학이 아니면 서양의 책들을 주로 탐독하겠지만, 이 게시글에 종종 다시 들르면서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뿌리에 대해 사유하게 해주는 책을 읽는 일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