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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2> 일부 요약(~순수이성의 이율배반)

임마누엘 칸트, 백종현 역, <순수이성비판2>, 아카넷, 2006 (추후 재검토할 것!)

초월 논리학 제2부 초월적 변증학

서론

I. 초월적 가상에 대하여 "초월적 가상은 우리를 전적으로 범주들의 경험적 사용 너머로 이끌고, 우리로 하여금 순수 지성의 확장이라는 환영으로 희망을 갖게 한다.(A295=B352, 강조는 원저자)"

II. 초월적 가상의 자리인 순수 이성에 대하여

A. 이성 일반에 대하여 이성은 인식의 원천은 아니지만 최상의 인식 능력으로, 지성이 창출해낸 선험적 종합명제들인 원리들을 다루는 능력에 해당한다. "보편에서 개념을 통해 특수를 인식(A300=B357)"하는 능력이 곧 이성이다. 예컨대 삼단논법에서 대전제에서 매개념을 거쳐 결론을 내는 추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성을 규칙들에 의거해 현상들을 통일하는 능력이라 한다면, 이성은 원리들 아래에서 지성규칙들을 통일하는 능력이다.(A302=B359)"

B. 이성의 논리적 사용에 대하여 "이성은 추리작용에서 매우 잡다한 지성 인식들을 최소수의 원리들(보편적 조건들)로 개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들의 최고의 통일성을 성취하고자 추구한다.(A305=B361)"

C. 이성의 순수한 사용에 대하여 이성은 직관이 아닌 지성적 판단들과만 관여한다. "도대체가 객관들 그대로를 인식하고 규정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포함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낱 우리 지성의 저장물을 가지고 살림살이하는 주관적 법칙일 뿐이다.(A306=B362)" 그렇다면 이런 순수 이성 역시 종합적인 인식을 해낼 수 있는가가 문제시된다. 순수 이성의 종합적 원칙은 조건적인 것이 결국 무조건자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무조건자가 존재하느냐와 무관하게, 그런 무조건자가 있는지 찾겠다는 것이 이성이 추리를 수행하는 원칙이다). 이 원칙들로부터 나오는 종합명제는 초험적이다.

cf. 순수 이성의 논리적 사용: 삼단논법 추리 vs 순수 이성의 초월적/실제적real 사용: 추리를 끝낼, 절대적으로 보편적인 초월적 이념 생성(CC, 201) 

초월적 변증학 제1권

순수 이성의 개념들에 대하여 이성개념은 지성개념과 달리, 모든 경험이 그에 종속되지만 "그 자신은 결코 경험의 대상이 아닌 어떤 것[무조건자]에 관여한다.(A311=B367)" 지성개념을 범주라고 불렀듯 우리는 순수 이성개념을 '초월적 이념들Ideen'이라 부를 수 있다. (이념 일반과 초월적 이념은 구분되어야 한다. 모든 이념이 초월적 이념인 것은 아니다.)

제1권의 제1절 이념들 일반에 대하여 칸트는 순수지성개념들로부터 나오는(그러나 경험으로부터 실재성이나 타당성을 보장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들과 구별되는) ‘이념’의 일반적인 정의를 찾기 위해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해 살펴본다. 이데아는 “경험 중에는 결코 그것에 상응하는 것이 만나지지 않는 [...] 사물들 자신의 원형들이며, 한낱 범주들처럼 가능한 경험을 위한 열쇠가 아니다.(A313=B370)“ 이데아는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자 모범이며, 경험을 평가하는 이념이 된다. 자연적인 사물 역시 이데아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나 칸트에게 더 중요한 것--그가 동의할 만한 것--은 덕의 이념 쪽이다. 왜냐하면 도덕, 입법, 종교의 원리에 있어서 “이념들이 (선에 대한) 그 경험 자체를 비로소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A318=B375) “내가 행해야만 할 것에 대한 법칙들을 행해진 것에서 끄집어내거나 그걸 가지고 제한하려 하는 것은 가장 배격해야 할 일이다.(A319=B375, 강조는 원저자)” 물론 칸트의 이념들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달리 인간의 정신 바깥에 있지 않은 주관적인 것들이며, 감각되는 세계를 지배하지도 않는다. 감각되는 세계를 초월하는 물 자체에 대한 지식을 줄 수 있다고 (실제로는 이념들이 생겨나는 것에 불과한데도!) 오도할 뿐이다(CC, 202). 이제 칸트는 “순수 이성의 영향과 그것의 가치를 합당하게 규정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 순수 이성의 초월적 사용과 그것들의 원리들 그리고 이념들(A319=B376)”을 알고자 한다.

제1권의 제2절 초월적 이념들에 대하여 칸트는 (판단들의 형식으로부터 범주를 산출했던 것처럼) 이성추리의 형식으로부터 초월적 이념들의 수효를 확정하고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이성은 삼단논법 추리를 통해 계속해서 조건의 조건을, 전제의 전제를 찾아 올라가려 하며 궁극적으로는 절대적인(=모든 관계맺음에서 가능한, 제한 없이 타당한) 원리, 즉 무조건자를 찾고자 한다. "초월적 이성개념이란 다름아니라 주어진 조건적인 것[e.g.결론]을 위한 조건들 전체[e.g.매개념들의 집합]라는 개념이다. 이제 무조건적인 것만이 조건들 전체를 가능하게 하고, 거꾸로 보자면 조건들 전체는 항상 그 자체로 무조건적이므로, 순수 이성개념 일반은 무조건자라는 개념에 의해 [...] 설명될 수 있다.(A322=B379, 강조는 원저자)" 이에 따라 "첫째로 주관[주체, 주어]에서 정언적 종합의 무조건자가, 둘째로 한 계열을 이룬 연쇄 항들의 가언적 종합의 무조건자가, 셋째로 한 체계에서 부분들의 선언적 종합의 무조건자가 찾아져야만 할 것이다.(A323=B379, 강조는 원저자)"

cf. 적극적으로 그에 대해 사변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는 물 자체의 대상들(경험될 수 없는 무조건자, 이성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은 필연적으로 이념들을 생성해내며, 그 이념들이 객관적으로도 참인 지식, 특히 신/자유/영혼에 관해서는 선험적인 지식들이라고 (지식이 아니라 초월적 가상illusion일 뿐인데도) 잘못 믿는다.(CC, 200) 인간이 오류에 빠지는 것이 불가피하므로, 그때그때 비판을 통해 제어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매력적이다.

Q. 무조건자에 대한 이성의 요구는 왜 필연적으로 이 세 초월적 이념들을 생성하는가? (--> 다음 절 참조)

A. 이성추리에는 대전제 내에서 주어와 술어가 맺는 관계에 따라 정언적, 가언적, 선언적인 것이 있다. 이에 따라 무조건자를 찾아가는 방식에도 세 종류가 있는 것이다.(CC, 203) 또는 지식의 기본적인 세 구성 요소가 곧 사고하는 주체, 현상들의 계열, 대상 일반이기 때문에 이성이 그에 대해 필연적으로 무조건자를 찾고자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Paul Guyer, CC, 205).

Q. 주관과 정언판단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이성은 이성통일, 즉 "모든 지성활동들을 각 대상과 관련해서 하나의 절대적 전체로 통합할 것을 노(A326=B383)"린다. 다시 말해 자신의 초월적 이념 하에 모든 지성할동들을 통일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절대적 전체, 무조건자는 경험될 수 없다. 따라서 "순수 이성개념들의 객관적 사용은 항상 초험적이다.(A327=B383)" 이념들 중에서도 초월적인 이념들, 즉 위에서 언급한 세 무조건자들은 "이성 자체의 본성에 의해 부과된 것으로, 따라서 필연적으로 전 지성 사용과 관계 맺는다.(A327=B384)" 초월적 이념들 또는 초월적 이성개념들은 지성의 적용 대상을 확장시켜주지는 않지만, 지성의 사용을 일관되게 만들어주며 "자연개념들에서 실천적 개념들로 이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그렇게 해서 도덕적 이념들 자체에 지주를 제공하고 또 이성의 사변적 인식들과의 연관성을 제공"할 것으로 일단 추측된다(A329=B385).

 저 세 무조건자들이 무엇인지 연역하기 위해 칸트는 우선 이성추리의 종류들을 구분한다. 이성추리에는 올라가는 계열이 있고(전기 삼단논법), 내려가는 계열이 있다(후기 삼단논법). 전자는 대전제에 대해서마저 그 전제를 찾고자 한다. 이때 "(전제 계열의 전체가) 주어져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만(A331=B388)" 계열의 모든 고리들이 도달 가능하다. 반면 후자는 "이 계열의 전체라는 것이 가능하기라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관심할 수 있다.(A332=B389)" 초월적 이념들을 확정하는 이성추리는 당연히 전자의 계열이다.

cf. 다음 절의 A336=B393-4 참조. 내려가는 계열은 지성에 의해서도 추적될 수 있다(이성과 지성이 본질적 차이를 가지지 않고, 그에 의한 활동의 고차원성의 정도에 따라서만 구분된다는 견해에 힘을 실을 만한 대목이다). 순수 이성의 "초월적 이념들은 단지 조건들의 계열에서 무조건자에게까지, 다시 말해 원리들에게까지 올라가는 데에 쓰인다.(강조는 원저자)"

제1권의 제3절 초월적 이념들의 체계 "우리가 그것에 관해서 개념 내지 이념을 형성할 수 있는, 표상들의 모든 관계는 3중적이다. 곧, 1. 주관과의 관계, 2. 현상에서 객관의 잡다와의 관계, 3. 모든 사물 일반과의 관계가 그것들이다.(A334=B391)" 따라서 초월적 이념 역시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의 것사고하는 주관[주체]의 절대적 (무조건적) 통일이고, 둘째의 것현상의 조건들의 계열의 절대적 통일이며, 셋째사고 일반의 모든 대상들의 조건의 절대적 통일을 내용으로 갖는다. 사고하는 주체는 영혼론[심리학]의 대상이고, 현상들의 총합(곧, 세계)은 우주론의 대상이며, 사고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최상 조건을 함유하는 사물(곧, 존재자 중의 존재자)은 신학[신이론]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순수 이성은 초월적 영혼론, 초월적 세계학, 또한 마지막으로 초월적 신인식에 대한 이념을 제공한다.(A334-335=B391-392, 강조는 원저자)" 다시 말해 각각의 무조건자는 영혼, 세계, 그리고 신이다. 첫째는 정언적 이성추리에 의해, 둘째는 가언적 이성추리에 의해, 셋째는 선언적 이성추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야기된다. 이 야기 또는 연역은 객관적으로는, 즉 대상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이성의 본성으로부터 주관적으로 이끌어내는 일은 꾀할 수가 있(A336=B393)"다.

 순수이성은 "자기 자신(의 영혼)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세계인식으로, 그리고 이것을 매개로 근원존재자로 전진(A337=B394-395)"한다. "이 이념들에 대한 통찰은 신학과 도덕, 그리고 이 양자의 결합에 의한 종교, 그러니까 우리의 현존의 최고의 목적들을 순전히 사변적인 이성능력에 의존시키고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시키지 않을 것이다.(A337=B395의 각주)" 칸트에 따르면 인간 현존의 목적은 이성을 통해 찾아진다.

초월적 변증학 제2권 순수 이성의 변증적 추리들에 대하여 초월적 가상에 불과한 것에 "객관적 실재성을 부여(A339=B397)"하는 이성추리를 변증적 또는 궤변적 추리라고 부른다. 그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그에 대한 직관이 없는, 그에 대한 아무런 잡다도 함유되어있지 않은 주관이라는 (논리적일 뿐인) 초월적 개념으로부터 그것의 절대적 통일성을 추리하는 초월적 오류추리이다. 둘째는 "주어진 현상을 위한 조건들의 계열의 절대적 전체라는 초월적 개념"에 대해 "그 무조건적인 종합적 통일성에 대해 항상 자기모순적인 개념을 갖는다는(A340=B398)" 초월적 이율배반이다. 셋째는 "사물들 일반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조건들의 절대적인 종합적 통일성", 즉 "모든 존재자 중의 존재자를 추리(A340=B398)"하는 것으로 이는 순수 이성의 이상이라 불린다.

초월적 변증학 제2권의 제1장 순수 이성의 오류추리에 대하여 사고하는 나를 탐구하는 이성적 영혼론(모든 구체적 경험으로부터 독립해서 "모든 사고에서 나타나는 한에서의 이 '나'라는 개념에서 추리될 수 있는 것(A342=B400, 강조는 원저자)"만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명증적이지 못한 경험적 심리학과 구별된다)은 영혼이 실체이고, 단순하고, 하나의 수적으로 동일한 인격이며, 공간상의 대상들과 오직 가능한 관계에만 있어 그것들 없이도 독립적으로 실존할 수 있다고 천명한다. 그러나 사고하는 나는 "모든 [지성]개념들에 수반하는 한낱 의식일 따름"으로, "단지 그것의 술어들인 그 사고들에 의해서만 인식되며, 그것만 따로 떼어서는 그것에 관해서 우리는 최소한의 개념도 가질 수가 없다.(A346=B404)" 이처럼 영혼은 표상이 아니라 표상일반의 형식일 뿐인, 또는 "아무런 내용도 가지지 않는 전혀 공허한 표상(A346=B404)"이다.

[A판 오류추리론]

첫째, 실체성의 오류추리 - 순수 영혼론의 첫째 오류추리에 대한 비판 모든 "사고에 항존하는 논리적 주관(A350)"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런 직관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그것에 실체라는 범주를 적용하는 종합판단을 내릴 수 없다. 따라서 영혼이 고정불변적이며 독자적으로 존속하고, 발생도 소멸도 하지 않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영혼이라는 개념은 단지 이념에서의 실체를 표시하며, 실재에서의 실체를 표시하는 것이 아(A351)"니다.

둘째, 단순성의 오류추리 - 초월적 영혼론의 째 오류추리에 대한 비판 단순성의 오류추리는 사고가 합성체가 아닌 단순한 실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추리한다. 그러나 사고하는 존재자가 단순해야 한다는 것은 주관이라는 표상에서 따라나오는 것이지, 예지체로서의 주관 자체에 같은 성질이 내재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Q. A352의 논증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셋째, 인격성의 오류추리 - 초월적 영혼론의 째 오류추리에 대한 비판 시간이 흘러도 내가 그대로 동일한 나임을 의식하는 것은 내 사유들이 연관성을 가지기 위해 요구되는 형식적 조건, 논리적 동일성일 뿐으로 실제적 동일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타자에 대한 관찰이 이를 보증한다.

넷째, (외적 관계의) 관념성의 오류추리 - 초월적 영혼론의 째 오류추리에 대한 비판

 회의적 관념론자는 "나는 본래 외적 사물들을 지각할 수는 없고, 단지 나의 내적인 지각에서 [지각의 원인으로서] 그것들의 현존을 추리할 뿐"이라고 믿으며, "외적 대상들의 현존이 직접적인 지각에 의해 인식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러나 이로부터 우리가 외적 대상들의 실재성을 일체의 가능한 경험에 의해서는 결코 완전히 확실하게 인지할 수는 없다고 추리하는 자이다.(A368)" 교조적 관념론자는 "물질의 현존을 [아예] 부인(A377)"한다. 반면 초월적 관념론자는 모든 현상을 "사물들 그 자체가 아니라 순전한 표상들로 보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단지 우리 직관의 감성적 형식일 따름이고, 사물 그 자체로서의 객관들의 그 자체로 주어진 규정들이거나 조건들이 아니라고 하는 이론(A369)"이다(칸트). 초월적 실재론자는 "시간과 공간을 (우리 감성에 독립적인) 자체로 주어진 어떤 것으로 본다.(A369)" 이 구분 하에서, 초월적 관념론자는 관념론자와 달리 외적 사물, 물질의 실존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경험적 실재론자지만, 초월적 실재론자와 달리 외적 대상들 역시 현상에 불과하며 나의 표상들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실존하듯이, 똑같이 외적인 사물들도 실존한다. [...] 내감의 대상(곧, 나의 사고내용)의 현실서에 관해서 추리를 할 필요가 없듯이, 나는 외적 대상들의 현실성과 관련해서도 추리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 둘 모두 표상들일 따름이며, 표상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각(의식)은 동시에 그것들의 현실성에 대한 충분한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A371, 강조는 필자)" 경험적 대상은 "그것이 공간상에서 표상되면 외적 대상이라 일컬어지고, 오로지 시간 관계에서만 표상되면 내적 대상이라 일컬어진다.(A373, 강조는 원저자) 그러니 초월적 관념론자에게 물질, 외적 대상이란 알려지지 않는 초월적 대상과 달리 공간 안에서 마주쳐질 수 있는 사물을 일컬을 뿐이다. 초월적 관념론은 경험적 이원론이기도 하지만, "표상방식의 차이를 이 사물들 자신의 차이로 간주(A379)"하는 유심론 및 유물론과는 다르다.

cf. 각주 79번: 지각-감각 구분과의 유사성

오류추리들에서 비롯한 순수 영혼론의 결산에 관한 고찰 우선 "'나'는 직관도 아니고, 어떤 대상에 대한 개념도 아니며, 의식의 순전한 형식(A382)"이다. 또한 "그것이 영혼과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그토록 큰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물질[물체]이란 [...] 우리가 외감이라 일컫는 직관에 의한 알려지지 않은 대상에 대한 일종의 표상방식이다.(A385)" 외감의 대상인 물질과 내감의 대상인 영혼은 "완전히 구별되는 이종의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 그 자체가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은) 대상들의 현상들의 이종성을 의미할 뿐(A385)"이다. 물질은 작용 또는 촉발의 결과지 원인이 아니다(정확히는 알 수 없다). 물질과 정신의 상호작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물질을 현상이 아닌 촉발 원인 즉 사물 그 자체로서 부당하게--이성의 월권을 허락함으로써--취급할 때만이다.

☆☆☆ 규정하는 자기는 초월적 통각에 해당하며, 개념상--이념상--단순한 실체이다. 또는 그런 실체일 것이 인식의 주관적 조건/형식으로서 요구된다. 그러나 규정되는 자기는 일종의 객관으로 그것에 대해 그런 종합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B판 오류추리론] 실체로서의 영혼이라는 개념에 대해, 그 개념이 객관적으로 실재하기 위해서는 고정불변적인 직관이 요구되는데 내감에서는 그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실체로서의 영혼의 단순성은 "사고 일반에서의 자기의식의 순전히 논리적인(<->객관적인) 질적 통일성으로 전환된다.(B413)" 모든 사고하는 존재자가 실존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cf. 직관 없음 그러나 선험적으로 요구됨(칸트)=인상 없음 그러나 경험적으로 상상됨(흄)

영혼의 고정불변성에 대한 멘델스존의 증명(=단순한 것은 소멸할 수 없다) 논박 영혼에도 설령 그것이 단순한 존재자라 해도 밀도적 크기가 있기 때문에 점차 무로 되어갈 수 있다. 영혼의 소멸은 가능하다.

☆☆☆ 영혼이 불사적인지 아닌지 사변이성으로써 알 수 없다고 해서 그에 대한 실천적 이성사용이 제한되지는 않는다. 이성의 실천능력은 이성 비판을 통해 "자연 질서의 조건들에 구애받음 없이 목적들의 질서,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 자신의 실존을 경험과 이생의 한계를 넘어서 확장할 권리를 얻는다.(B425)" 내세는 여전히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진다.

Q. 어떻게 이성의 실천능력은 이성 비판을 통해 "자연 질서의 조건들에 구애받음 없이 목적들의 질서,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 자신의 실존을 경험과 이생의 한계를 넘어서 확장할 권리를 얻는"가? B430-432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초월적 변증학 제2권의 제2장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회의론과 교조주의는 "모두 건전한 철학의 죽음(A407=B434)"이다. 세계 전체, 또는 현상들의 종합에서의 절대적 전체성이라는 개념은 이념일 뿐이다. 절대적 전체성과 절대적 통일성은 구별되어야 한다. 후자는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이 아닌 이상과 관련되어있다.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제1절 우주론적 이념들의 체계 순수이성은 "조건적인 것이 주어지면 조건들의 전체, 그러니까 저 조건적인 것을 가능하게 했던(A409=B436) 단적인 무조건자도 주어진다는 원칙에 따른(A409=B436)"다. 그러므로 순수이성은 조건들의 소급 계열, 즉 배진적 종합(<-> 결과 계열, 즉 전진적 종합)만을 문제삼는다. 시간에 대해 따지자면 미래가 아닌 지나간 시간만이 취급되며, 공간에서도 각 한계지어진 공간들은 다른 공간을 자기 한계의 조건으로 전제하므로 그에 대해서도 초월적 이념이 형성된다. "이렇게 공간에서 실재적인 것, 다시 말해 물질(A413=B440)"의 경우에는 가장 단순한 단위를 찾아나서는 작업이 곧 무조건자로의 전진이 된다. 주의할 것은 이 이념들에서는 대상 일반이 아니라 "현상들의 계열에서[의] 무조건자(A414=B441)"만이 문제시된다는 사실이다. 그에 따라 여기서는 계열과 관계되어있는 인과성의 범주만이 소급의 근거가 된다.

 우주론적 이념들의 체계가 쫓는 무조건자는 세계의 시초, 세계의 [공간적] 한계, 물질에 대해서는 단순한 것, 원인에 대해서는 절대적 자기활동성(자유), 가변적 사물들의 현존에 대해서는 절대적 자연필연성이다.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제2절 순수 이성의 반정립론 반정립론이란 "교조적인 인식들의 (즉 정립과 반정립의) 상충"이다(A420-421=B448). 이를 펼치기 위해 칸트는 "싸움의 대상이 어쩌면 한낱 환영[...]이 아닐까 어떨까를 탐구(A423-424=B451)"하는 회의적 방법을 사용한다. 회의적 방법은 확실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회의주의와 구별된다.

순수 이성의 이율배반 

  정립 반정립
초월적 이념들의 첫째 상충 "세계는 시간상 시초를 가지고 있으며, 공간적으로도 한계로 둘러싸여 있다.(A426=B454)" 세계가 시초를 가지지 않는다면, "모든 주어진 시점에 이르기까지 영원이 경과한 것(A426=B454)"인데, 이는 불가능하다. (주어진 시점에까지 이르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또한 세계가 공간적으로 무한하다면, 세계의 전체성은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양적인 것의 전체성은 부분들에 부분들을 계속 종합하는 일을 완결함으로써만 생각될 수 있는데, 무한한 전체에 대해서는 이러한 완결이 개념상으로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한성의 참된 (초월적) 개념인즉, 단위의 연이은 종합은 크기적인 것을 제 아무리 끝까지 측량해도 결코 완결될 수 없다.(A432=B460)" "세계는 시초나 공간상의 한계를 갖지 않으며, 오히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무한하다.(A427=B455)" 세계가 시초를 가지지 않는다면, 그에 "세계가 있지 않았던 시간, 다시 말해 빈 시간이 선행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릇 빈 시간에서는 어떠한 사물의 발생도 가능하지 않다.(A427=B455)" 또한 세계가 공간적으로 유한하다면, "세계는 한계가 없는 빈 공간 안에 있는 것일 것이다.(A427=B455)" 그러므로 자신이 속하지 않는 소위 바깥 공간과도 관계를 맺을 텐데, 세계란 개념상 절대적 전체로서 자신 바깥에서는 "어떤 상관자도 마주칠 수 없으므로, 세계의 빈 공간과의 관계는 세계의 아무런 대상관의 관계도 아닐 터이다.(A429=B457)" 따라서 아무것도 아닌 것, 무가 세계를 한계짓는 셈이 되고, 세계는 무한해진다. "우리가 공간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세계한계를 가정한다면, 우리가 이 두 가지 무물, 곧 세계 밖의 빈 공간과 세계 이전의 빈 시간을 가정해야만(A433=B431)" 하며 이것들은 현상될 수 없는 예지세계에 속하므로 모순을 낳는다.

Q. 무물들의 가정은 왜 필연적인가?
초월적 이념들의 둘째 상충 "세계 내의 모든 합성된 실체는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고, 어디에서나 단순한 것이거나 이것으로 합성된 것만이 실존한다.(A434=B462)" 합성된 실체들이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져있지 않다면 무한분할이 가능하다는 뜻이므로 따라서 아무런 실체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합성의 폐기를 생각할 수 없게 되거나(=합성된 실체들이 아예 분할 가능하지 않다고 말해야 하거나), 합성의 폐기 후에도 남는 단순한 부분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합성의 폐기를 생각할 수 없다면 합성된 실체는 실체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합성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내의 모든 합성된 실체는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곧, 세계의 사물들은 모두 단순한 존재자들이고, 합성은 오로지 이것들의 외적 상태이(A436=B464)"다. 여기서 세계의 사물들이란 공간, 시간, 우유적 상태가 아닌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현상적 실체에 해당한다. (이상 초월적 원자론 혹은 단자론의 변증적 원칙) "세계 내의 어떤 합성된 사물도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세계 내 어디에서도 단순한 것은 실존하지 않는다.(A435=B463)" 첫째, 만일 합성된 사물이 단순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합성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져있는 것이다. 각 단순한 부분 역시 한 공간씩 차지해야 한다. 그런데 "한 공간을 차지하는 모든 실재적인 것은 서로 밖에 있는 잡다를 자기 안에 포함하고, 그러니까 합성된 것(A435=B463, 강조는 필자)"이다. 이는 모순이다. 둘째, "단적으로 단순한 것은 순전한 이념(A437=B465)"이다. 모든 경험적 직관 또는 지각은 잡다들의 종합을 요구한다. 따라서 "감성세계에는 아무런 단순한[종합돼있지 않은] 것도 주어져 있지 않다.(A437=B465)"

Q. "한 공간을 차지하는 모든 실재적인 것은 서로 밖에 있는 잡다를 자기 안에 포함"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cf. "공간의 어떤 부분도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어떤 부분도 단순하지 않다.(A441=B469)"

Q. 단자론자들의 입장(A439=B467)은 무엇인가? 이해하지 못했다.
초월적 이념들의 셋째 상충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인과성은, 그로부터 세계의 현상들이 모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의한 인과성 또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A444=B472)"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 외의 인과성이 없다면, 모든 원인은 자신의 원인을 전제하므로 계열의 완결성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은 제1원인마저 충분히 선험적으로 규정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 외의 인과성 즉 "자연 법칙들에 따라 진행하는 현상 계열을 자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원인들의 절대적 자발성, [...] 초월적 자유를 받아들여야 한다.(A447=B475, 강조는 원저자)" 이때, 이 제1원인은 세계의 시초와 구별되며, 복수일 수 있다. "자유는 없다. 오히려 세계에서 모든 것은 오로지 자연 법칙들에 따라서 발생한다.(A445=B473)" 초월적 자유는 인과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인과성을 전제해서만 가능한 통일된 경험/경험 연관--감성세계--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초월적 자유는 개념상 법칙성을 가질 수 없으며 맹목적이다. 우리는 무법칙적인 능력인 자유가 아닌 자연만을 선택하는 대신 "경험의 일관된 합법칙적인 통일성을 약속(A448=476)"받는 데 만족해야 한다. 자유를 인정하게 될 경우 우리는 자연을, "보편적인 법칙들에 따라 서로 필연적으로 규정하는 현상들의 연관 및 그와 함께 경험과 꿈을 구별하는 경험적 진리의 징표(A451=479)"를, 그것의 법칙성과 연관성을 잃을 것이다. 
초월적 이념들의 넷째 상충 "세계에는 그것의 부분으로서든 그것의 원인으로서든 단적으로 필연적인 존재자인 어떤 것이 있다.(A452=B480)" 변화에는 그것을 지배하는 조건이 있다. 그런데 "모든 조건적인 것은 그 현존에 있어서, 오로지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단적으로 무조건적인 것에까지 이르는 조건들의 완벽한 계열을 전제한다.(A452=B480)" 즉 시간상의 조건 계열에는 절대적 전체성이 있다. 따라서 그에 따라 변화가 후속하는, 이 무조건적인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무조건자는 우리의 감성세계 내에 있다. 그래야만 세계 내 변화들을 후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비약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것은 "현상의 조건적인 것에서 개념상의 무조건적인 것으로 올라가는(A456=B484)" 우주론적 논증에 해당한다.

Q. 시간상의 조건 계열에는 절대적 전체성이 있다는 것은 증명된 것이 아니라 이성이 원칙으로 삼을 뿐인 것이 아니었던가?

Q. 변화는 우연성, 즉 반대 상태도 가능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증명은 어떻게 예지적 원인으로부터 경험세계 내의 결과로 비약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가?(A460=B488)
"단적으로 필연적인 존재자는 세계 안에든 세계 밖에든 어디에도 그것의 원인으로서 실존하지 않는다.(A453=B481)" 세계 내의 변화들의 계열은 그 "모든 부분들이 우연적이고 조건적이(A453=B481)"다. 따라서 세계 자신이 필연적인 존재자거나 세계 안에 그런 것이 있을 수는 없다. 세계 밖에도 필연적인 존재자는 있을 수 없는데, 그것이 세계원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하는 순간 "현상들의 총괄에, 다시 말해 세계에 속해야만(A455=B483)" 하게 되어 모순이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