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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zehn

바다 망령의 숨(2022.4)


 추위. 크리스마스가 지나자마자 불쑥 찾아왔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날은 좋지 않았다. 거리가 쓰레기로 가득했기 때문에, 실내에 한참 박혀 있었다. 축제를 벌이지 않은 몸으로 한겨울을 맞았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러서 불현듯,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의견에 지나지 않은지 의심했다. 나는 의견이다, 하고 말을 내뱉어 보았다. 내가 지금, 여기 있음은 진리가 아니라고. 오늘 내 말 상대는 차디찬 공기였으며, 입김이 마스크 너머로 퍼져 허공에 짧은 자취를 남겼다.

 나는 일을 마치고 직장을 나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두껍지는 않았다. 보풀이 많이 일고, 주머니가 양 옆으로 큼직하게 달린 못생긴 코트였다. 겨울 내내 이것으로 버텼다.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옷을 사는 데 쓰지는 않았다. 술을 많이 마셨고, 비싼 술을 골라 마셨다. 왜 그랬지? 누가 물으면 겨울이니까, 라고 시시하게 답할 것이다. 하지만 봄에는 봄이니까, 여름에는 여름이니까, 가을에는 가을이니까 술을 마시지 않아?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로 위스키를 마시지 않아? 이렇게 추궁 당한다 해도 그럴듯한 변이 준비돼 있지는 않다.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집으로, 감정들의 진원지로 향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않고 시내로 빠졌다. 번잡한 거리에서 하차해서는, 얼마 전부터 드나들고 있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당장의 선택이 내게 유해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의 술도 유해했지만, 그 공간 자체가 지독했다. 그곳은 실내에서 금지된 담배의 연기 대신 외로움이 자욱했다. 모두가 혼자 오거나, 여럿이서 와도 외로워져서 나갔다. 하지만 내가 얌전히 귀가하는 일이 더 유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회의 규범에 걸맞은 그것조차 의견이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미친 듯이 울려대는 전화를 무시했다.

 철문을 열었다. 환풍기가 열심히 돌아가지만, 망령들이 내뿜는 고독한 기운의 저항에 부딪혀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은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하나씩 디딜수록 서서히 숨이 막혀오는 감각이 익숙했다. 나는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을 즐기면서 바 자리의 맨 끝에 앉았다. 등 뒤에 청록색으로 칠해진 비상구 문이 있어 그나마 안정감이 드는 자리였다. 게다가 중앙 조명에서 가장 멀어서, 어둠에 몸을 숨기는 채 모든 사람을 둘러볼 수 있었다. 나는 오늘의 망령들은 누구인지 살폈다. 새로 입장한 망령은 누구이며, 점점 더 자발적으로 생명을 이 힘도 없는 지하 정부에 헌납하고 있는 오랜 망령들은 어디에 앉았는지를, 익숙한 자리들에 앉아있는지, 아니면 자리를 바꿔 새로운 삶 대신 새 시야라도 원하는지를. 이미 대여섯 번은 마주친 것 같은, 어깨가 모딜리아니의 그림에서처럼 둥글고 검은 앞머리를 길게 내린 여자가 나와 멀찍이 떨어져서 마르가리타를 마시고 있었다. 마신다는 표현은 부적절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음료를 마시기도 전에 잔의 둘레에 뿌려진 소금을 게걸스럽고 악착 같이, 끝까지 핥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옆에 앉은, 초록색 볼캡을 쓴 남자는 얼음이 녹으면서 점차 연해져가는 위스키를 가만히 방조하고 있었다. 어깨를 웅숭그리고 고개를 숙인 데다 모자 때문에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한편 나와 가장 가까이에 앉은 낯선 남자 둘은 술잔을 다 비우고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조악한 질감의 나무 테이블을 손으로 긁고 있었다. 애정인지 우정인지는 알 수 없어도 곧 헤어짐을 말할 것이 분명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면 그들 뒤의 진녹색 벽이 두 사람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이 집어삼켜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탤리스커 나왔습니다.”

 모래시계 같이 잘록한 부분이 있는 작은 잔으로부터 바다 향기가 올라왔다. 숨을 참고 입 안에 머금자 약간의 바나나 맛과 소금에 절인 생선 맛이 언제나 놀라운 의외의 조화를 이루면서 감돌았다. 탤리스커는 내 입술의 안쪽을 태우고 날카롭게 식도 속으로 파고들었다. 벌써부터 몽롱해지는 것처럼 느꼈다. 단숨에 도수 45도의 술이 담긴 잔을 절반이나 비웠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한 모금을 더 들이킨 뒤 조망의 자세로 되돌아갔다. 머리를 바싹 깎은 바텐더의 눈은 유난히 튀어나온 이마와 높은 코 때문에 움푹 파여있었다. 그는 바텐더로 성공하기에는 너무 수줍었다. 여러 번 얼굴을 비췄는데도 날 알아보는 기색이 없었고, 또는 알아보려는 의지가 없었고, 기계적으로 술을 내준 뒤에는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편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외로운 날들 가운데서 유달리 외로운 날에는 술 맛은 괜찮으시냐고, 계속 탤리스커만 드시는데 다른 것도 시도해보지 않으시겠냐고 물어봐줬으면 싶기도 했다. 그런 소망이 일 때면 괜히 잔을 빠르게 비우고 같은 술을 새로 시켰다. 물론 바텐더는 매번 손님의 요구를 묵묵히 이행했을 뿐 입만은 꾹 닫고 있었다. 나는 바로 술을 들이켠 뒤, 알코올 덕에 신적으로 증가된 내 상상의 힘으로써 내게 무심해서 괘씸한 바텐더의 존재를 지워낸 다음 바 전체를 바닷물로 채웠다. 콧망울이 부풀어올랐다. 두 볼이 동그랗게 부풀어올랐다. 마르가리타 여자가 어느새 피부가 매끈한 돌고래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축 처져 있었던 지난 시간은 마치 연기에 불과했다는 듯이, 돌연 등 위의 지느러미를 꼿꼿하게 쳐든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잔 속에 술이 조금 남아있다는 사실에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입구 쪽에서 몸집이 조금 더 작고 예쁜 돌고래 하나가 하얀 배로부터 유쾌하게 이어지는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마치 수족관을 탈출해 빠져나가듯 기쁘게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단번에 두 생명체 사이의 역사를 꿰뚫어 보았다. 벅차오르거나 적어도 간질거리고, 불안하고, 지저분하고, 평범하고, 바로 그 이유로 비범했을 사랑의 역사 따위를 말이다. 그 순간 지능이 고도로 발달해버려 나는 재차 지상의 인간이 되었고, 더 이상 두 돌고래들의 소통을 감지할 수 없었다. 외로워진 데다 술이 조금 깨버렸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어올라 남은 술을 얼른 마신 뒤 한 잔을 더 해치웠다. 

 거리로 나왔다. 바닥에 꽁초가 한 무더기 나뒹구는 곳을 찾아 어슬렁거렸다. 나는 금연 사인과 금연 사인 사이에 박해를 피하듯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담배를 태웠다. 두 개비째에서 벌써 머리가 시원하게 맑아지면서 하수구 안을 들여다볼 용기가 생겼다. 나는 감옥의 쇠창살처럼 오물을 보호하고 있는 하수구 뚜껑 사이를, 마치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듯이 골똘히 바라보았다. 오수를 타고 흐르는 쓰레기들이 자유로워 보였다. 그것들은 오염된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색깔과 모양 따위를 도도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내가 술을 너무 빠르게 마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성을 정비할 수 있기도 전에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넘어지고 있었다. 균형을 잃고 있었다. 그때 모르는 손이 나의 팔뚝을 잡아서 들어올려주었다. 발목이 살짝 꺾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적어도 바닥에 나앉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다행을 만들어준 사람의 얼굴을 올려다 봤다. 얼음이 녹는 것을 방조하고 있던, 초록색 볼캡을 쓴 남자였다.

 “지갑을 떨어뜨리셨어요.”

 그는 내게 아무 무늬도 없는 가죽 지갑을 건넸다. 정말 내것이었다. 떨어뜨린 줄도 몰랐다니, 나도 모르는 새 어지간히 취해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상냥하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볼캡은 바로 돌아가지 않고 청바지에서 전자 담배를 꺼냈다. 그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가 잘 가눠지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나도 연초에 새로 불을 붙였다.

 “바람이 찬데요.”

 볼캡이 말했다. 나는 한동안 담배를 입에 가져가지 않고 그 끝에 재가 길고 위태롭게 불어나는 것을 내버려두면서 무의미한 희열을 느꼈다. 나는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답했다. 

 “사람 마음이 더 차갑죠.”

 “그런가요.”

 나는 볼캡의 따뜻한 말투, 단지 그것에 희망을 걸면서 그에게 술을 한 잔 더 마시지 않겠냐고 물었다. 대신 아까 내가 앉았던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덧붙였다. 왜냐하면 비상구 앞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어차피 바텐더는 나를 알아볼 생각이 없고, 원체 무심한 성격 탓에 이미 계산을 마쳤던 사람이 다시 고개를 기웃거린다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왔던 길을 말 없이 되돌아갔다.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은 여전했지만, 덜 외로웠다. 포티스헤드의 음악이 갓 틀어진 가운데 나는 갓파더를, 그는 사이드카를 주문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새틴 질감의 긴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우리의 옆에서 파스칼을 읽고 있었다. 바텐더는 그녀의 수그린 정수리를 쳐다보다가 우리의 술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렸다. 여기까지 와서 팡세라니, 같잖다고 생각했다. 고백하자면 같잖게 느끼는 것은 일종의 방어 기제였고, 이 지하에 내려와서도 팡세를 읽을 만큼 지성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옆에서 나는 마초이즘 때문에 공감도 잘 가지 않았던 영화 이름에서 따온 칵테일이나 마시고 있는데.

 여자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나는 볼캡의 얼굴이 가까이서 보니 나 못지않게 불콰하다는 것을 알고, 천천히 그의 손등 위로 내 손을 포개 보았다. 볼캡은 그것을 꽤 오랫동안 놓지 않고 있다가, 끝까지 침묵을 지키는 채로 나는 갓파더를 다 마시고, 그는 사이드카를 다 마셨을 때, 마치 삼지창을 치켜세우듯이 내 손에 의해 덮여있던 자신의 손가락들을 들어올려 깍지를 꼈다. 그 순간 우리는 애정이 필요한 사람들의 동맹을 이뤘고, 누가 먼저 동작을 취했다고 말하기도 어렵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온 신경이 입술로 쏠리면서 나는 더 깊은 교감을 향한 욕망을 느꼈다. 그런 동시에 죄의식을 느꼈다. 왜냐하면…… 입맞춤이 진해지자 그가 청록색 문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나도 그가 원하는 것을 원하고 있었지만, 입맞춤 이상의 행위가 낳을 죄의식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기인지, 무책임함인지 모를 감정의 힘으로 일어서면서 그의 단단하고 마른 몸을 내게 밀착시켰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텐더는 조금도 우리를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나 또한 이곳에서 커플들이 공허한 눈으로 청록색 문을 여는 모습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바텐더는 오히려 예의를 차리겠다는 듯 사뿐하게 뒤를 돌아서 갑자기 설거지 따위를 시작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볼캡이 나를 안은 채로 비상구를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나는 한동안 내 혀로 그의 입천장을 문지르고, 치아의 윤곽을 그리고, 갈비뼈가 만져지는 등을 쓰다듬고 가볍게 할퀴는 따위의 일에 열중하느라고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술기운이 더 올라왔고, 잠깐뿐이었지만 슬픔이 가시는 것처럼 느꼈다. 성욕이 내 마음 속에 먹으로 새겨진 슬픈 글귀들을 뜨거운 증기로 지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삽입을 준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눈을 떴을 때, 사면은 막혀있었다. 청록색 문의 너머는 비상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빈 술병들과, 술집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온갖 자질구레한 자재들, 이를테면 두루마리 휴지 따위가 쌓여있는 창고일 뿐이었다. 나는 안 될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볼캡에게 말했다. 황급히 옷매무새를 정돈했고, 볼캡도 도로 속옷을 추켜올렸다. 볼캡은 민망해 하면서 왜죠, 라고 물었다. 나는 여기가 비상구가 아니어서, 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거짓-비상구의 문을 연 뒤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서 거리로 올라왔다. 그제야 시아버지의 부재중 전화들을 확인했다. 나는 겨울 바람을 맞으며 갓 돌이 지난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규범 또한 의견에 불과했지만, 내 욕망보다야 진리에 가깝게 느껴졌으므로.

*

 애기 아빠를 만난 것은 3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어느 메가 처치의 뒷골목에서였다. 예배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겠답시고 그 경건한 자리를 용케 박차고 나온 그를 나는 잠시동안 쳐다보았다. 그 역시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함께 담배를 피웠다. 내 담배 연기가 자꾸 그의 쪽으로 가서 신경이 쓰였다. 나는 두 번째 담배를 꺼내면서 자리를 옮기려고 했다. 그때 그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정확히 말하면 그러지 말아달라는 듯, 절박함이 담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저기요.”

 “네?”

 그러나 적적한 마음이 앞섰을 뿐, 그 마음을 어떻게 포장해서 내놓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깬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신도세요?”

 “네, 아니요? 아니지,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고, 몸을 갑자기 들썩이게 된 바람에 미처 털지 못한 담뱃재가 내 하얀 로퍼 위로 떨어졌다.

 “지도교수님을 따라왔을 뿐이거든요.”

 “지도교수님이요?”

 “선생님께선 제가 여기 왔는지도 모르시지만요.”

 내가 알기로 21세기는 학문과 종교가 분리된 지 오래인 시대였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가 교수를 따라 교회에 오게 된 사정이 궁금해졌다. 신학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랬더라면 신도냐고 묻는 물음에 부정적으로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 자기 사정을 털어놓을 사람을 찾고 있는 눈치였으므로, 나의 호기심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우리는 손에 들고 있는 담배만 다 피우면 커피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거대한 교회의 터를 떠나서 신호등을 건너, 마찬가지로 거대한 프랜차이즈 커피숍들 사이에 끼어있는 자그마한 카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캐롤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나는 평소보다 유난히 더 불경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용기를 내서 처음 나와본 예배가 내 마음을 움직여주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이 컸다. 그러나 왠지, 반묶음에 오버롤 차림인 이 소탈해 보이는 남자 앞에서라면 내 불만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눈물 흘리며 감격스러워 하는 이방인들을 함께 떠나게 되어 행복하다는 것을 표정으로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이인 것처럼 솔직한 대화를 시작했다.

 “저는 서양의 중세철학을 공부하고 있고, 얼마 전부터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어요. 제 석사논문을 지도해주신 교수님께서 퇴임을 앞두고 계셨기 때문에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께서 갑자기 크게 아파지셔서 곁을 떠날 수 없게 되었어요. 다행히 퇴임 직후 새 교수님께서 바로 부임하셔서 지도의 공백 없이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신입생이 들어와서 동료도 생겼죠. 계획이 틀어진 것에 비해서는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했어요. 얼른 코스웍을 마치고 논문을 쓰자, 혹시라도 아버지의 병환이 더 깊어지셔서,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박사를 마치고 사회인이 된 모습을 보여드리자, 그런 의욕으로 가득 차있었죠. 그런데……”

 “그런데?”

 “새로운 교수님께서 부임하신 뒤 두 달만이었어요. 선생님께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고, 막내 교수에게 행정 업무가 몰리는 시스템이었던 지라 한 번도 식사 자리를 가진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두 달만에 선생님께서 저와 신입생을 부르셨어요. 지도교수와 지도 학생들로서 밥이나 한 끼 제대로 먹자고, 제안이 늦어서 미안했다고 말이에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저는 옆구리에 굳이 보에티우스를 끼고 교수식당에 들어갔어요. 신입생 역시 옆구리에 굳이 아벨라르두스를 끼고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아직 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의례적으로 인사를 나눴어요. 제가 한동안 연구실에서보다는 집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얼굴은 처음 보는 것이었죠. 그런데 왠지 그 분이 저에게 적대감을 느끼시는 것 같았어요. 적대감이라는 표현이 지나치다면, 적어도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이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 분은 아직 석사과정에 계셨고, 서구 중세가 얼마나 긴데 연구 분야가 겹칠 확률도 낮았고, 설령 겹친다고 하더라도 깊은 토론을 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기면 좋은 일 아닌가요? 그런데 제가 너무 나이브했나 봐요. 그 분께서는 한눈에 보아도 저를 경계하셨고, 제 석사논문의 주제에 대해 마치 디펜스를 요구하듯이 심문하셨어요. 그러다 갑자기 낯빛이 밝아졌는데, 제 등 뒤로 교수님께서 들어오고 계실 때였죠. 오셨어요 교수님, 하고 말씀을 하시는데, 목소리가 180도 바뀌어서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이상한 사람을 동료로 만나는 것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려니 하려고 했죠. 제 나이도 이제 서른인데, 그런 사람을 하나 하나 노여워 할 만큼 속이 좁지도 않고. 저희 셋은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관심 분야에 대해 몇 마디를 나눈 다음 식사를 주문했어요. 문제는 음식이 나왔을 때였어요. 음식이 나오자마자, 물론 교수님께서 수저를 드신 뒤에나 저도 들 생각이긴 했지만, 아무튼 숟가락 쪽으로 먼저 손이 간 저와 달리 두 사람은 동시에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숙인 고개와 합장된 손 사이로 입으로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저에게 의미가 통하는 말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단순히 중세철학자들 특유의 세계관과 논증 방식이 흥미로워서 공부를 하고 있었을 뿐, 신앙이 있지는 않았거든요. 저를 제외한 두 사람의 기도 소리는 1분 넘게 지속되었어요. 교수님께서 먼저 아멘, 하고 손을 내려놓으시자 신입생도 아멘, 하고 손을 내려놓았어요. 그리고는 교수님께서 옆으로 고개를 돌려 독실하시네요, 라고 말씀하셨고, 신입생은 경건한 미소로 화답했어요. 그 순간에 저는 완전히 두 사람의 안중 바깥에 있었죠.

 식사를 하는 동안 신앙 얘기가 다시 나온 건 아니었어요. 저희는 철저히 학구적인 대화만을 나눴고, 삼천포로 새봤자 어디 사냐 정도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소외되어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1분 동안의 기도를 통해 마치 저는 결코 끼어들 수 없는 친밀한 동맹이 이미 둘 사이에 맺어진 것만 같았어요. 저의 피해의식인지, 정말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님께서 저에게 보내시는 미소와 신입생에게 보내시는 미소가 결이 달라 보였어요. 저와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반면, 신입생과는 인격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그런 주관적인 의구심은 이후 몇 번의 식사 자리에서도 계속됐어요. 두 사람은 1분, 가끔은 2분씩 함께 기도를 했고, 꼭 동시에 기도를 마쳤고, 그 동안 저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속으로 초나 세고 있었죠. 옹졸한 마음이 몸집을 불리면서, 이러다 나중에 임용에 불이익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과장된 불안까지 생겼어요. 저에게 직접 불이익이 닥칠 것 같다기보다, 모든 유리한 기회가 저보다는 신입생에게 먼저 갈 것 같았어요. 실제로 신입생 분께서는 무척 총명하셨고, 제가 석사논문을 쓰는 데 4년이나 걸린 데 반해 그 분은 2년만에 작업을 마치실 수 있을 것처럼 보였어요. 유학을 가지 않는다면 박사과정까지 올라오시는 건 시간 문제였죠. 공부가 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됐어요. 펜이 잡히지 않을 때마다, 저는 졸렬하게도 교회에 나가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지도교수님께서 다니시는 교회에요. 그래서 오늘 처음 나와본 거예요.”

 “근데 왜 뛰쳐나오셨어요?”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요. 목사님 말씀이 잘 믿어지지도 않고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었죠.”

 그는 그제야 다 식은 플랫화이트를 약수물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웃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고, 나까지 그 신입생이 얄미워졌다.

 “이제 저한테도……”

 그는 나에게 내 차례라는 눈빛을 보냈다. 

 “제 사연은 그쪽 얘기에 비하면 너무, 뭐랄까…… 사변적일 텐데요.”

 “철학도가 사변을 싫어할 거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가 다시 웃자 쑥스러워진 나는 브루드 커피를 세 모금 연속으로 홀짝거렸다. 커피가 너무 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부터 이미 갈색보다는 황금색에 가까웠다.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 이야기여서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아무렇게나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내가 ‘아무에게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문득 놀랐다.

 “그러면 어떻게 말씀하시고 싶으세요?”

 “글쎄요. 바다를 보면서?”

 “바로 들을 수는 없겠네요.”

 그는 바다 이야기를 하는 나를 감상적이라 생각하는 대신 진심으로 아쉬워 했다. 우리는 전혀 다른 화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바우하우스 양식을 모방한 듯한 카페의 인테리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근대적이지 않은 고풍스러운 분위기 사이의 공존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되는 대로 떠들어댔다. 그러다 어떤 이유로 십 년 새 크고 작은 카페들이 대한민국의 모든 골목을 지배하기 시작했는지에 관한 토론으로 넘어갔다. 그는 내가 마주쳐온 다른 남자들과 달리 전반적으로 냉소적인, 논쟁에 임할 때면 이따금은 공격적이기까지 한 나의 말투에 아랑곳 않아주었다. 시답잖은 지점들에서 이가 다 보이도록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온기와 허기를 동시에 느꼈다. 거절 당할 확률은 낮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그에게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는 만두를 먹고 싶어 했고, 나는 볶음밥이 먹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중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길 위에서 내가 일주일에 사흘은 볶음밥을 먹는다고 약간은 시큰둥한 투로 말하자, 그는 눈썹을 여덟 팔 자 모양으로 구부리며 이유를 몹시 궁금해 했다.

 “나는 전체와 부분이 똑같이 생긴 음식이 좋거든요. 먹기가 편해서.”

 “전체와 부분이…… 어떻다구요?”

 “볶음밥은 일부를 덜어도 그 일부를 이루는 게 전체와 같잖아요. 전체도 당근과 달걀, 대파, 맛살로 이루어져 있고, 한 숟갈에도 당근과 달걀, 대파, 맛살이 다 들어가 있고……”

 그는 볼을 잔뜩 붉히고, 예의 그 축제에 온 사람 같은 미소를 내보였다. 그의 이마 위로 삐져나온 긴 머리카락 한 가닥이 아직은 그렇게까지 차지 않은 초겨울의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아니, 그의 몸 전체가 바람과 무관하게 기쁨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가 아직 기쁨을 거두지 못하던 중, 골목의 어느 지점에 이르러 우리는 햇살을 받았다. 

 “저보다도 더 철학적인 분이시네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다 먹고 나서야 우리는 통성명을 하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카페에서처럼 또 이것저것에 대해 되는 대로 대화하느라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학도 정마루와, 심리상담사 한성지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우리는 벌써 서로에게 농담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친밀해져 있었다.

 “어렸을 때 별명은 ‘정말루’?”

 “어떻게 아셨어요? 성지 씨는, 음, 혹시 ‘성지 순례’였을까요?”

 “아뇨, ‘한 성질’이요.”

 그가 안 믿는 눈치기에 저 진짜 한 성질 하는데요, 입도 거친 편이고요, 라고 덧붙였다. 그는 괜찮아요, 다 좋아요, 라고 답함으로써 자신의 본심 한 조각을 내 발 밑에 슬쩍 흘렸다. 그것을 주우면서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쉽게도 우리는 식당 앞에서 바로 헤어져야 했다. 마루가 아버지를 간호하러 병원에 가봐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번엔 혹시 바다를 보러 갈 수 있겠냐고, 성지 씨만 괜찮다면 함께 가고 싶다고 묻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역사로 향하던 그의 뒷모습을 계속 생각하면서 좀 더 걸었다.

*

 아기는 시어머니의 품에서 내 품으로 옮겨지자마자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내 옷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 같았다. 나는 얼른 외투를 벗고, 조심스럽게 아기의 머리를 받쳐든 채 그네를 태우듯 팔을 휘저었다. 목소리를 상냥하게 만들었고, 이런저런 애정의 표현으로 울음을 달래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기는 더 절망적으로 울어댔는데, 애써 사랑을 말하는 내 입에서 이번엔 술 냄새가 나서인 듯했다. 나는 내가 내 힘으로 낳은 아기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사랑해줄 수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벽을 보는 채로 동요를 불러주었다. 그제야 아기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루와 성지의 사랑이 낳은 바다는 희미해졌을 뿐, 여전히 풍겨오는 엄마의 악취를 천천히 인내해 갔다. 인내심이 부족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시력을 가진 바다의 눈과, 마찬가지로 헤아릴 수 없는 이해력을 가진 바다의 귀가 경멸스러웠다. 그녀가 이토록 무능하다는 것이 경멸스러웠다. 그녀가 무능한 만큼 나의 책임이 배가되었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무거운 만큼, 마루의 부재에 슬퍼졌기 때문이다.

 마루였다면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

 지금, 여기 마루 대신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정말 의견일 뿐이어서, 사실은 내가 부재하게 되었고 마루가 살아남았더라면, 그게 진리인 세계에서라면 마루는 지금 바다를 어떤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아마 깨끗하게 살균된 수영장 물 같은 좋은 향기를 풍기면서 바다를 웃겨주었을 것이다. 바다를 능숙하게 재우고 나서야 잠깐 골목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을 것이다. 마음속에서는 나를 잃었다는 슬픔을 품고 있을지라도, 겉으로는 전혀 표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시아버지께서 한창 편찮으셨을 때에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는 수술실 밖에 앉아서도 보부아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매정함보다는 침착함에, 여유보다는 그만의 인내에 가까웠다. 나는 마루에게 기대, 그의 너른 어깨 너머로 사후세계가 없다고 믿는 작가의 문학을 엿보며 마루의 아버님을 위해 기도했다. 그 동안 어머님께서는 화장실에서 울고 계셨다. 그녀와 달리 마루는 의사들이 나와 수술을 잘 마쳤다는 말을 전했을 때에야 눈물을 흘렸다.

 그러니 그 세계에서의 바다는 적어도 어려서는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 것이었다. 결핍감도 동경도 없이, 내가 그 환함에 반해버린 미소를 마음껏, 실컷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당장의 바다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가 없는 것이나 똑같았다. 불현듯 내가 바다에게 수유를 하지 못하게 된 지가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술에 절어서도 물론 내 몸 속의 여성은 계속해서 자기의 할 일을 해냈다. 나는 아침마다 숙취를 느끼며 건강하지 않은 젖을 밖으로 짜내야 했다. 누런 모유 거품이 들러붙어 있는 세면대를 닦은 뒤엔 출근길에 차에 치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집을 나섰다. 바다가 태어난 지 수개월이 지나서도 유방은 매일같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단단해지곤 했다. 

 어쩌다 시부모님의 질책에 못 이겨 술을 마시지 않은 날들에는 바다가 내 유두를 깨물었다. 그동안 자신을 보살피지 않은 데 대해 복수하겠다는 듯, 작지만 가시 같은 이로 내 유두를 찢었다. 그녀는 꼭 피를 봐야만 만족했다. 나는 멍든 가슴으로 내가 아닌 다른 멍든 가슴들을 위로했다. 오전 10시에는 울분을, 11시 30분에는 참회를 귀담아 들었다. 물론 귀가하면 다시 깨물렸다.

 “어떻게 저한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차가울 수 있었을까요.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해줬더라면…… 아니, 때리지만 않았더라면…… 지금 저는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거예요. 하루살이처럼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성인이 되기 전엔 그냥 아버지께서 저를 아껴주시길 바랐어요. 그런데 다 큰 지금 와서는, 선생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냥 제가 모르는 데서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어디 건물 같은 게 무너져서 그냥 깔려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요.”

 “아이를 많이 때렸었어요. 그땐 애 아빠 없이 혼자 너무 힘들어서, 아니, 남들 다 하는 육아인데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하여튼 그때엔 애한테 멍이 들도록, 멍 위에 또 멍이…… 다 내 손으로 그랬어요. 저는 어쩌면 좋죠,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아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에요. 나는 처음부터 엄마가 될 자격이 없었던 거예요. 애한테 미안해서 어떡하죠. 다 늦어서 어떡해……”

 10시 정각에 찾아온 아들의 아버지가 11시 30분의 어머니였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주지 않았다. 둘은 저마다의 고독 속에 감금되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열쇠를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매번 손에 쥐어주는 것 정도였다. 열쇠는 아예 만들어지지 못하거나, 만들어져도 일회용이 되는 데 그치곤 했다. 슬픈 점심을 먹는 동안, 나는 내가 10시 정각의 아들과 11시 30분의 어머니 모두를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커피를 시키면서는 바로 그 이해했음을 이유로 혼란에 빠졌다. 너무 오래돼서 익숙한데도 늘 새로운 방식으로 불가해한 혼란이었다. 편두통에 시달릴 때면 14시의 내담자가 기댄 벽 위로 탤리스커의 색깔이 덧입혀져 보였다. 바다는 자꾸만 금빛 탤리스커에 빠져 익사했다. 나는 내가 수영하는 법을 아는데도 구조하지 않는 것인지,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잊기 위해 퇴근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알면서 구조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가혹했다. 수영을 모른다는 생각은 구원을 주는 대신 파렴치했다. 술만이 나를 아무래도 좋은 연옥 속으로 몰아넣어주었다. 나는 계속해서 심판을 지연하고 있었는데, 슬퍼할 시간을 벌고 싶은 것도 같았다.

*

 우리는 도저히 함께 바다에 갈 수가 없었다. 마루에겐 평일의 수업 및 각종 스터디, 주말의 병 간호가, 나에겐 상담 일과 거의 항시적인 잡무가 있었다. 물론 서로 짤막한 짬이야 낼 수 있었지만 같이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정도였지, 작정하고 하루를 뺄 여유는 부족했다. 그랬으므로 마루가 자신에게 묘책이 있다고 말했을 때, 나는 믿지 않았다.

 “밤 샐 생각은 없는데.”

 “밤 샐 필요 없어요, 저희 학교 앞으로 와주시기만 하면 돼요.”

 마루의 학교는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고, 바다는커녕 호수도, 아니 분수대도 없을 것처럼 번잡한 대학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속아주는 마음으로 일을 마치고 그곳을 찾아갔다. 너무 일찍 도착한 바람에, 아직 강의실에 있을 마루를 기다려야 했다. 나는 골목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타로 가게 한 곳을 편의점처럼 애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들은 무엇이 그렇게 알고 싶을까, 나에게도 알고 싶은 게 있는데. 모두가 무엇인가는 알고자 한다. 그러나 운 좋은 소수에게만 필요한 앎이 주어지며, 운 나쁜 소수는 그것에 대한 지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그런 문제에 매달린다…… 나는 답이 없는 질문에 사로잡힌 사람의 형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정신은 마치 거울처럼 나 자신의 형상을 되비쳐주었다. 나는 테두리가 화려한 어느 타로 카드 안에 숄 하나만 걸친 채 알몸으로 갇혀 있었고, 내 발 아래엔 ‘THE WORLD’라고 쓰여 있었다. 카드는 역방향으로 뉘여 있었다. 여전히 반묶음에, 다만 다른 색깔의 오버롤 차림으로 나온 마루가 와서야 나는 내 관념 속의 물구나무 서기를 중단할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무엇을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세계라고 대답하는 대신 물구나무 서기, 라고 답했다. 그랬는데도 그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아아, 세계를 거꾸로 보기, 라고 중얼거리고는, 나를 어느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한 바로 이끌었다. 덮을 수 있는 모든 벽에 은은한 양귀비 향이 나는 남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폐쇄적이지만 아늑한 술집이었다. 중앙에는 수족관이라 하기엔 작지만 어항이라 하기엔 너무 큰 직육면체의 수조가 놓여 있었다. 마루는 마치 자기 소유의 물건을 만지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얼굴로 의자를 끌어내고 수조에 바싹 붙어 앉았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으므로 사람보다 붉은 물고기의 수효가 더 많았다. 물고기들은 무척 빠르게 헤엄치고 있었다.

 “바다 보여준다더니. 이걸 말한 거예요?”

 내가 수조를 가리키면서 약간은 아쉬워 하는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건 그냥 서론 같은 거예요.”

 그런 다음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바텐더에게 다가가 친숙하게 인사를 나눈 뒤,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들을 잔뜩 주문했다. 얼마 뒤 무엇인가가 불 위에서 자글거리며 익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바텐더가 커다란 쟁반 위에 나폴리 파스타 두 그릇과 위스키 두 잔을 얼음 없이 내 왔다. 파스타의 맛은 그저 그랬지만, 위스키는 아니었다. 나는 왜 마루가 나에게 바다를 보여줄 수 있다고 그토록 자신감을 가지고 말했는지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눈을 감으니 바로 옆에서 수조의 물이 보글거렸고, 물고기들이 선홍색의 춤을 췄고, 입 안에 뜨겁고 짠 맛이 압도적으로 바다와 비슷한 향과 함께 밀려들었다.

 “탤리스커라는 술이에요. 1960년에 증류소가 완전히 불에 탔는데, 한 성직자가 내린 저주 때문이라는 루머가 있어요.”

 “왜 저주했는지 알겠는데, 너무 짜릿해서.”

 우리는 남은 술을 마저 마셨고,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뒤 다시 한 잔씩을 마시고 또 담배를 피웠다. 술기운에 몸은 처졌지만 흡연을 해서인지 머리가 맑아졌다. 나는 나른한 바닷가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그곳에 온 목적을 상기했다. 마루 역시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 어부들처럼 자애로운 얼굴로 내 말에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길게 말하면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아서요, 짧게 이야기할게요. 사람들은 저한테 저마다의 상처를 털어놓아요. 세상은 잔인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죠. 저는 그들의 울화에 차분하게 공감해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요. 그런데 또 다른 이유로 저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요. 상처를 받아서가 아니라, 상처를 줘서 오는 사람들이에요.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를 줬다는 데서 스스로 상처 입은 사람들인데, 쉽게 말해 죄의식을 느끼는 거예요. 저지른 일에 비해 지나친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들도 오고, 잘못의 크기에 상응하는, 마땅한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들도 와요. 저는 그 사람들의 자책에 골고루 자기연민을 권유해요. 심지어는 제가 느끼기에도 많이 잘못 됐다고 생각하는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도요. 그게 제 일이니까요, 그런 사람에게마저 삶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저 역시 크게 방황했던 시절, ‘그 어떤 사람도 동정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을 듣고 감화돼서 이 직업을 택했던 거였거든요. 이 직업이 선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어서요.

 그런데 문득, 제가 비슷한 종류의 잘못에 대해 이 사람과는 함께 화를 내주고, 저 사람에게는 자기연민을 이끌어낸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화를 내줄 때도, 연민을 품어줄 때도 마음 속에서 똑같은 정당성을 느끼면서 그렇게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만약 그릇된 일을 당한 사람에게도, 그릇된 일을 가한 사람에게도 제가 똑같이 행복한 삶을 권유한다면, 뭔가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얼마 전부터 저를 괴롭혔어요. 저는 무조건적인 것에 가까운 자비를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그게 정의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에요. 제 말들을 이해하세요?”

 “네, 이해했어요.”

 “자비로워야 한다는 의견, 정의로워야 한다는 의견만 있고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진리는 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교회에 와봤어요, 왜냐하면 여기서 믿는 신은 용서하는 동시에 심판한다고 들어왔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예배에 와보니 내내 천국 이야기만 하데요. 지루하기도 하고, 담배 생각도 나고 해서 뛰쳐나왔죠. 나는 내가 죽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상관 없어요. 다만 살아있는 동안, 많이 부족하고, 심지어 때로는 악한 적이 있었던 사람으로서도 선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런데 내 이야기의 무게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뭔가 잘못 전달했나 싶어 불안해졌다.

 “제 얘기에 이상한 구석이라도 있나요?”

 “아뇨, 역시 저보다도 훨씬 철학적이셔서요. 계속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요, 오히려 평소에는 머리를 전혀 쓰지 않게 돼요. 라틴어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학교를 떠나면 이미 지성이 고갈되어 있어요. 집에 가면 맥주나 마시면서 최선을 다해 생각을 비우고, 널브러져 자야 합니다. 실존적인 고민 같은 건 완전히 뒷전이에요.”

 그러면서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코를 고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의 장난기 어린 몸짓 덕에 불안을 털어낼 수 있었다.

 “지금 저 미리 변명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성지 씨의 고민에 깔끔하게 답해줄 수 없거든요. 철학을 공부해도 사실 별 수 없어요, 무지는 무한하니까요. 죄송해요.”

 “죄송해 하실 것 없어요, 이런 문제에 정답이 있다면 철학자들은 실업자가 될 테니까.”

 “이미 실업자나 다름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인데요.”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경박할 정도로 웃었다. 오랜만에 그렇게 헐떡이면서까지 웃어보는 것이었다. 내 가슴 속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나온 고민을 말한 직후에 그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았다.

 “저 진지한데, 중철 연구자들끼리는 거의 합의가 된……”

 “아, 숨 차. 괜찮아요. 오늘 술은 제가 살게요.”

 “그럼 죄송하지만 한 잔만 더 마셔도 될까요?”

 그날 우리는 한 잔만 더 마시지 않았다. 거의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바에 남아있었고 둘 다 자제력을 잃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처음부터 자제할 생각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루를 나의 오피스텔로 초대했다. 우리는 등 뒤로 문이 닫히자마자 서로를 껴안고 키스를 나눴다. 마루의 커다랗고 천천히 따뜻해져가는 품 속에서 나는 그와 한 몸이 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어쩌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의식중에는 그 순간을 고대해왔는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 정도로 강한 욕망이었다. 침대 위에서 나는 마루와 사랑을 나눴다. 몸을 움직이며 최대의 악력으로 감싸쥔 그의 팔뚝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숨을 모두 고른 후에야 나는 피부에 영구히 새겨진 그 글자들을 뜯어볼 수 있었다.

Omnis creatura subjecta est vanitati, liberabitur.

 모로 누워 쉬는 마루에게 그 뜻을 묻자, ‘허무에 처해있는 모든 피조물은 해방될 것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로부터 나는 왠지 모를 위안을 얻었다. 마루와 함께하기만 한다면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선과 다른 선 사이, 진자의 운동과도 같은 그 투쟁에 언젠가는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날부로 마루는 평일 내내 우리 집에 머무르면서 학교에 출퇴근을 했고, 주말에만 아버지가 계신 병원 근처로 되돌아갔다. 몇 주가 지나니 나의 오피스텔에 그의 짐이 너무 많이 쌓여버렸다. 그러자 마루는 안 되겠네, 이거 이사해야겠네, 성지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 짐 때문에, 라고 말하면서 능청을 떨었다. 나 역시 그러게, 네가 좋아서가 아니라 짐 싸는 거 거들기가 귀찮아서, 같이 살아줘야겠네, 라고 받아치면서 마루에게 안겼다. 마루는 아무 근거도 없이, 심지어는 해방의 주체를 명시함도 없이 그저 구원될 것이라고 말해주는 문신이 새겨진 어마어마한 팔로 나를 감싸 안았다. 그의 따스한 손이 내 머리카락을 파고들면서 나에게 평온함을 안겨주었다. 성지야, 아버지께서 호전되고 계셔. 수술하고 나서 예후가 좋은가 봐. 다 너와 함께 있은 덕분이야. 내가 너무 행복해져서, 그게 아버지께 다 전해진 거야, 라고 내 귓가에 대고 속삭여주는 마루의 목소리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이 남자를 아주 오랫동안,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사랑할 것임을 확신했다.

 동거를 시작한 지 몇 달 후, 그 확신은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 가운데서 공인되었다. 각각 스토아주의와 스피노자, 칸트를 전공한다는 마루의 세 친구들이 어설프지만 진심 어린 축가를 불러줬고, 한복을 입은 우리 엄마는 울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성질머리 드러워서 절대 결혼 못할 줄 알았는데, 라는 말을 너무 크게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동창생 한 명이 어머니 성지 착해요, 겉으로만 사나운 거예요, 라고 외쳐주어서 그나마 민망한 마음을 덜 수 있었다. 우리는 예산상 일정이 길지는 못했지만 신혼여행으로 아름다운 수도원이 있는 프랑스의 소도시에 다녀왔다. 천 년이 지나도 견고한 그 수도원의 벽처럼 우리 둘의 마음도 무너질 리 없다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었다. 그렇게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방탕한 일주일이 흘렀다. 사실 그 날들 중 하루에 바다가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마지막 날 밤, 침대에 엎드린 채 핸드폰으로 찍은 수도원의 사진들을 넘기고 있던 마루에게 내가 잠결에 물었었다. 있지, 만일 신이 모든 것을 미리 정해놨다면, 선행뿐만 아니라 악행까지도 언제, 어떻게 벌어질 것인지가 모두 결정되어있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라고 말이다.

 “네가 공부하는 신에겐 그런 능력이 있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지?”

 마루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쉽게 성공하는 주장은 아니야. 일단 신이 우리와 같은 종류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면 ‘미리’라는 말이 성립하기 어려워. 이건 신학적인 문제. 과거에 상정된 필연성이 미래에까지 구속력을 가질지는 논리학적으로 성가신 문제.”

 “복잡해.”

 “자유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도 문제야. 성지가 말한 숙명 같은 게 있다고 해도, 우리의 자유가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도 있어. 어쨌거나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다는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하고. 그 사실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아. 내가 방금 말한 것들 중에서 하나라도 걸림돌이 된다면, 신은 우리에게서 책임을 빼앗아갈 수 없어.”

 나는 마루의 차분한 변을 들으면서 호텔의 향그러운 이불 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러나 이불은 숨 쉬는 게 답답할 정도로 두꺼웠고, 내 육체는 오르가즘의 여운으로 매우 피로했으며 이성은 여전히 무질서했다.

*

 하루살이들은 잠이 없다. 하루살이들이 어떻게 잠을 잘 생각을 하겠는가. 하루살이들은 차라리 술을 마실 것이다. 결국에는 헤어지지 않고 손을 잡은 채, 다시 술을 마시는 저 부러운 남자들처럼. 새로운 애인을 사귄 것 같지만, 바텐더와 다를 것 없이 표정이 뚱한 볼캡처럼. 가방만 남기고 어딘가로 사라진 마르가리타 여자처럼. 며칠 전과 구성원이 똑같은 풍경이었다. 다만 팡세를 읽고 있었던 여자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만하게도, 그렇다면 오늘은 내가 이곳의 파스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첩을 꺼내 이렇게 적었다. 분노하려면 얼마든지 분노할 수 있다. 자비로워지려면 얼마든지 자비로워질 수 있다. 냉소하려면 얼마든지 냉소할 수 있다. 그러나 무한한 분노에는 정의와 황폐해진 마음이, 무한한 자비에는 사랑과 처참한 배신이, 무한한 냉소에는 평온과 빈번한 자기모순이 늘 함께 따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 분노와 자비와 냉소 가운데서 가장 적절한 하나를 골라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윤리의 어려움이다. 관점의 한계는 절대적이다, 라고.

 마루는 독일에서 열린 학회에 갔다가 돌을 맞아 죽었다. 문자 그대로 돌을 맞아 죽었다. 바이러스 전파의 책임이 아시아인에게 있다고 믿은, 어느 실직한 이민자의 공격이었다. 범행 당시 그는 심각한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일자리를 잃은 데다 비자가 만료된 탓에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서 필요한 약을 제때 구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치료를 미루다 생긴 비극이었다. 유일한 아시아계 학회 참여자였던 마루가 벽돌을 맞았을 때, 그는 다음날 아침에 먹을 빵과 우유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예쁜 미소를 머금은 채, 늘 낙천적이었던 만큼 조금은 안일한 태도로, 생각보다 밤에도 날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아마도 나와 바다를 그리워 하면서, 고심 끝에 받아들이기로 한 바다의 실존을 사랑하고 있으면서…….

 마루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 시각에 나는 바다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마루의 사망이 확정된 이후엔 이유식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머지않아 걸을 것이었다. 걸을 것이고, 뛸 줄도 알게 될 것이며, 결국 이런저런 일들에 스스로 뛰어들게 될 때까지 내 보호를 요구할 것이었다. 그 요구는 너무나 절실하고 무거운 것이어서 내 미래의 거의 모든 가능성들을 깔아뭉갰다. 그러나 나는 단지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한 게 아니었다. 그건 고통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누군가에겐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그 실업자를 향해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모든 일이 너무나 개연적인, 그래서 필연적인 것에 가까운 인과의 사슬 위에서 일어났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똑같이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내담자로 만난다면 당장 무슨 말을 건넬까? 성지 씨의 분노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그 어떤 논리도 성지 씨의 감정을 억압할 자격은 갖고 있지 않아요?

 “아니요, 나는 내 감정을 조금도 억압하고 있지 않아요. 있는 힘껏 분출하고 있어요. 다만 그 감정이 향할 곳이 없을 뿐이에요. 나는 누구한테 화를 내야 하나요? 저는 당장 누구에게 화를 낼 수가 있죠? 상황을 초월할 힘이 없는 인간에게?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충동 한가운데서 휘둘릴 수밖에 없는, 그런 약해빠진 인간에게? 아니면 존재하지조차 않는 것 같은 신에게? 존재한다면, 이딴 식으로 존재하는 게 더 문제일 그런 신에게? 내 남편은 도대체 누구에 의해, 무엇을 위해 희생된 건가요? 내 남편은 도대체……”

 그러고 나서 나는 나와의 남은 상담 시간을 그저 오열하는 데 써버릴 것이었다. 바의 스피커에서 오늘은 킹 크림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담배를 피워야 했다. 집이 없는 것도, 나라가 없는 것도 아니고 행성이 없다고, 자신은 소속되어있는 별이 없다고 울부짖는 존 웨튼의 목소리를 더 듣고 있기가 어려웠다.

 Starless and— bible black—

 사람이 아예 없는 곳을 찾아 헤맸다. 금연 표지로 벽들이 빽빽한, 빌라가 밀집해있는 주거지역에 들어섰다. 나는 진갈색 돌담에 몸을 기댄 채 어느 덤불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내 머리 위로 달만큼이나 하얀 종이에 ‘흡연 금지’라 쓰여있었지만, 술에 또 잔뜩 취한 데다 예의나 선 따위에 대한 모든 의지를 상실한 나에게 그 내용은 무시해도 좋을 의견일 뿐이었다. 새 담배를 뜯어서 첫 번째 연초를 입에 무려는데, 저 멀리 조금 더 후미진 곳에 머리가 긴 여자의 형상이 아른거렸다. 마르가리타 여자 같았다. 나는 발소리를 죽인 다음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마르가리타 여자가 현금으로 주머니 같은 것에 담긴 무엇인가를 사고 있었다. 내가 나도 모르는 새 인기척을 냈는지, 일순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현실을 생각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상적인 뇌를 가지고서는 도달할 수 없을 피안을 노리고 있었다. 마르가리타 여자는 스스로의 이성을 마비시킴으로써, 관념적으로나마 이 행성을 떠날 작정이었던 것이다.

 마르가리타 여자는 무심하게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주머니를 판매한 남자와도 헤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바로 되돌아가면서 유유히 내 앞을 지나쳐갔다. 그러나 나와 몸이 평행하게 놓였던 짧은 순간에, 비록 시선은 나를 겨누지 않았지만, ‘못 본 척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선명하게 감각했다. 그녀의 걱정과 달리 나는 신고는커녕, 그녀의 불법 행위에 동참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나 또한 그녀처럼 과정을 알 수 없는 신경의 교란에 의지하고 싶었다. 설명이 불가능한 마루의 죽음을 한 순간이라도 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사회를 오염시키는 범죄자였고, 나는 다만 금연 사인 밑에서 흡연을 할 뿐인 시민이었지만, 우리를 가르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도덕적 심연이 아닌 순전한 운에 가까웠다. 우리는 둘 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는 참아낼 수 없는 것으로 표상하고 있었으나 그녀에게는 운 좋게, 관점에 따라서는 나쁘게 주변에 마약을 가진 사람이 있었고, 나에겐 없었을 뿐이다. 그녀와 동일한 수준의 행운이 나에게 주어졌더라면 나 역시 같은 유혹에 굴했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담배의 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합쳐져 동그랗거나 유선형인 형상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앞으로 무한한 횟수로 담배를 피운다면, 언젠가 한 번은 우연히 마루의 얼굴이 형상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내 생명을 계속해서 이렇게 갉아먹는다면, 그것도 무한히 반복해서 그렇게 한다면 언젠가는 갉아먹힌 내 생의 양이 마루의 생을 아주 잠깐, 희미하게나마 되돌릴 만큼에 이르러서, 내가 살면서 사랑한 단 한 사람과 마지막으로 대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폐를 태워서 그의 망령과 재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끊임없이 새 담배를 꺼내 피우면서, 입 모양을 달리해가며 연기를 내뱉었다. 호오, 하, 헤, 후, 다시 호…… 그러나 사람과 비슷한 모양이 생기기는커녕 완결된 도형이 나오는 일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끈기도, 고집도 아닌 단순한 무모함으로 계속해서 새 담배를 꺼냈다. 한 자리에서 열 번째 담배를 피웠을 때는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금방이라도 기절해버릴 것 같았다. 내 머리 위로 매캐한 세계가 빙빙 돌았고, 불이 붙은 것처럼 목이 따가웠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마루의 망령은 나타나주지 않았다. 나는 열한 번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뒤, 입에 가져가지 않고 손목에 갖다댔다. 비명이 내질러졌다. 내 살갗이 타버렸다. 핏줄이 선할 정도로 창백했던 살의 표면에, 아무리 아름다운 표현을 고른다 해도 그을음이라고 말하는 게 최선일 그런 못난 상처가 생겨났다. 뜨거운 눈물이 상처에 떨어졌다. 마법적인 치유 같은 사건은 당연히 일어나주지 않았다. 그저 온 신경이 손목에 몰려있는 듯, 시간이 흘러도 딱히 줄어들지 않는 육체의 고통에 휩싸였을 뿐이었다. 나는 아직 불이 붙어있던 담배를 먼젓번의 상처 옆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도장을 찍듯이, 다시 한 번 담배 끝을 살갗 위로 내리누를 생각이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가는 일로부터, 이제 희망하거나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증으로서. 나와 함께 타올라줄 생의 동반자나, 미래를 이끌어줄 횃불 같은 것은 없고, 그을음만이 남았다는 표식으로서, 그을음 하나, 그을음 둘. 그런데…… 당장의 고통이 이렇게나 확실하고, 그것이 나의 고통이라는 것도 이렇게나 확실한데, 어떻게 이 모든 게 의견일 수 있나? 내가 고통 받는 몸으로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의견에 불과할 수 있나? 이렇게 아픈데, 너무 아픈데, 아파서 죽겠는데…… 나는 또 다른 핏줄 위로 지져질 예정이었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손이 벌벌 떨렸다. 그 순간 나는 방금의 내가 최초로 진리를 수행했으며, 그것도 진정한 자비 그리고 동시적인 정의와 함께 수행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돛대가 남아있는 담뱃갑을 덤불에 던져버렸다.

*

 바닷속은 의외로 따뜻했다. 침몰 이후로 나는 나를 부드럽게 밀어주는 흐름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헤엄을 치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는 상어로서, 나는 내 곁의 상어 무리가 헤엄치는 대로 따라다녔다. 나는 여섯 마리 정도 되는 그들을 아는 것도 같았고, 모르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 점이 딱히 중요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몸을 자유롭게 운동하고 있다는 데, 혼자가 아니라는 데 만족했고, 주위를 울리는 어떤 말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고등생물의 음성이라기보다는 바다 전체를 관통하는 자연의 파동 위에 꿈결의, 또는 술김의 언어가 덧입혀진 결과에 가까웠으며,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가 …를 사랑해, 라는 문장을 반복했다. 나는 소리의 진동수로부터 근원을 알 수 없는 쾌락과 편안함을 느끼며 계속해서 헤엄쳐 나갔다. 그러면서 주어와 목적어 자리에 내가 아는 이름들을 밀어넣어보기 시작했다. 마루가 성지를 사랑해. 성지가 마루를 사랑해. 마루는 바다를 사랑해. 바다는 성지를 사랑해. 바다가 성지를 사랑해. 성지가 바다를 사랑해. 성지는 바다를 사랑해…… 어떤 정신을 가졌는지, 정신을 가지기는 하는지 불분명한 상어 무리는 내가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을 때까지 나의 곁을 지켜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