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단편소설

제임스 조이스, <죽은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이강훈 옮김, ⟪죽은 사람들⟫, 열린 책들, 2021.

"어둠 속을 바라보면서 나는 허영심에 속고 놀림당한 어리석은 내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내 눈은 괴로움과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19, <애러비>) 

⟪더블린 사람들⟫의 일부를 떼낸 책.

 이 책에 실린 조이스의 단편소설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체계가 되기를 지향하기보다 하나의 인상 또는 감정을 최대한 깊게 파고들면서 단지 핍진하게 전하기를 목표로 삼는 것 같다. <애러비>는 사랑에 빠진 소년의 기대가 고조되었다가 돌연 실망에 부딪히는 순간을 조명하고는 끝난다. 소년이 그래서 소녀와 어떻게 되었는지 알리는 것은 작가의 의무가 아니다. 완결되지 않았다는 느낌 역시 결함이 아니다. <가슴 아픈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의 애인에 대한 제임스 더피 씨의 양가감정, 그녀의 나약함에 대한 경멸과 그녀를 떠나버림으로써 그 나약함을 자신이 초래했다는 책임감의 공존이 이야기를 이끈다. 남겨진 그의 외로움은 구제되지 않고, 도시의 밤 풍경과 함께 묘사되고 말 뿐이다. 한편 <죽은 사람들>은 앞의 서너 배 분량으로, 그나마 체계에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의 체계는 실패한 체계인데, 글의 전반부를 이루는 파티의 장면과 후반부를 이루는 마이클 퓨리의 이야기가 양적으로 지나치게 불균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양적 불균형은 후반부의 감정선을 살리는 데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다. 독자로서 나는 파티를 즐겼기 때문에, 그것도 매우 길고 흥겹게 즐겼기 때문에 마이클의 죽음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사람들>은 체계로서가 아니라 소설로서 성공했으며, 그것으로 되었다.

 남은 과제들은 내가 여기서 '체계'라는 말로 무엇을 표상하는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일, 그리고 그 정의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일이다. 나는 완결성과 인물의 구제, 분량에 대해 말했다. 이 말들은 충분한가. 충분히 좋은가.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체계는 소설 일반에 있어 얼마나 요구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