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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특별히 긴 글

화실 1장(2018.11)

Pablo Picasso, The Tragedy, 1903, oil on canvas.


1. 한가해진 안나는 한가해서 더욱 예민했다. 한가함에도 불구하고 예민한 것이 아니었다. 한가한 때에만 가능한 예민함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를테면 안나는 단골 카페에서 일요일 오후마다 지켜지는 사소한 규칙에 지나친 신경을 쏟았다. 그녀는 3시 10분과 3시 15분 사이에 반드시 양복을 입은 남자 네 명이 카페에 들어오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다리를 잘 꼬는 안나에 비해 그들은 늘 정자세를 유지했다.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으니 옷에도 구김이 없었다. 무더운 날에도 양복차림들을 고수했는데, 등 부분은 마치 갓 다림질되어 매장에 걸린 옷처럼 빳빳했다.

 그들이 의자에 앉으면 양복바지의 밑단 네 쌍이 아주 얌전히 말려 올라가 왼쪽과 오른쪽의 발목을 정확히 동일한 크기만큼 드러냈다. 그렇게 드러난 살조차 꼼꼼히 챙겨 신은 스포츠 양말 덕분에 면적이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언젠가 안나는 자신의 엄지손톱을 1센티 삼아 덩치가 제일 작은 남자에게서 드러난 발목의 크기를 어림해보았다. 가로 6센티 곱하기 세로 3센티는 18제곱센티미터. 다른 쪽 발목도 같은 모양새니 도합 36제곱센티미터의 노출. 그 정도가 얼굴과 목덜미와 손을 제하고서 공기와 접촉하는 피부의 전부였다. 안나의 찢어진 청바지에 난 구멍 하나만 해도 40제곱센티미터는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안나와 남자들 사이에서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손에 들린 책에 있었다. 그녀가 학교를 쉬는 김에 읽기로 한 책들은 종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저 늙은 성자는 숲 속에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것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구나."*

따위의 카피가 표지에 적나라하게 쓰여 있었으니까. 반면에 네 사람은 성경을 품안에 쏙 넣고 다니다가 자리를 잡자마자 조심스럽게 꺼내들곤 했다. 한쪽에서 경전이 암송되고 있을 때 다른 쪽에서는 철학자의 불경한 눈빛이 표지 위로 번뜩이는 셈이었다. 이 장면 하나로 주말 오후의 카페는 격렬한 싸움터로 화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밧줄을 향해 손을 뻗는 자들의 세계와, 주머니 속의 단도로 그 밧줄을 잘라내는 혹은 그 밧줄을 신기루로 생각하는 자들의 세계가 그곳에서 대립하고 있었다.

 같은 상황이 몇 주째 반복되자 언젠가부터 남자들이 안나를 흘깃거리기 시작했다. 그 시선 속에서 안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어머니의 꾸중을 다시금 듣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신이 없다면 대체 어디에 희망을 걸 수 있겠니, 하는 나지막한 번개―그렇다, 나지막한 번개―같은 어머니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생생히 되풀이되었다. 그때마다 안나는 죄책감과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남자들과의 신경전에서 지지 않기 위해 책을 꽉 붙들고 활자들 사이로 눈알을 굴리면서도, 어깨가 절로 움츠러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신앙을 품은 이들 앞에서 그들보다 강건한 확신을 갖고 맞설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신의 대안을 알고 있지 못했다.

 불안이 고조될 대로 고조되면 더 이상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안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뒤, 입학한지 한 학기 만에 휴학계를 내버린 대학의 정문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 앞에 서기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7평짜리, 자취하는 대학생의 거처치고는 작지 않은 집이었다. 그곳은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공간이기도 했다. 종교도, 철학도 아니라면 역시 의지할 곳은 예술뿐이라는 생각으로 안나는 문고리를 비틀었다.

 그러나 연필을 쥐자마자, 마치 종이 위에서 흑연의 정수리가 힘없이 마모되듯 그녀의 희망 또한 부스러져버렸다. 도저히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그리고 싶지가 않았다. 꼭 재현하고 말겠어, 와 같은 결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대상도 없었고, 내면에서 제재를 찾기엔 표현하기 마땅한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영혼은 혼란과 변덕, 즉 역접만을 사랑했으며, 거듭되는 역접은 완성은커녕 그림의 구상에도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았다.

 안나가 휴학을 감행한 것도 더 이상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대학이라는 제도에 얽매이기를 관두면 마법처럼 예술혼이 되살아나리라고 믿었다. 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헛된 것으로 밝혀졌다. 안나를 매일 아침, 적어도 침대에서 일어나게라도 해줬던 일과표가 사라졌을 뿐, 학교를 나가지 않게 된 뒤로도 그녀는 두 달 넘게 무엇을 진심을 다해 그린 적이 없었다. 늦잠은 손쉽게 오후시간을 침범했으며 게으름이 한계를 모르는 채 부피를 키워나갔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 동시에 그녀가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어느 보람된 기획이었다.

*

 안나가 처음 진현을 만난 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요일이었다. 그녀는 어김없이 패배한 보병처럼 정신의 한쪽 다리를 절뚝이면서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겨운 채 가까스로 연필을 쥐고 있다가, 해가 저물자 바람을 쐬기 위해 다시 집을 나왔다. 노을이 지고 있었지만 하늘이 흐려 해가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안나는 문득 배가 고팠다. 아침 겸 점심으로 입안에 구겨 넣은 식빵 두 조각과 블랙 커피 외에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다.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것은 안나에게 너무나 성가신 진실이었다. 여태까지 게걸스레 먹어온 끼니들의 수를 대강 세보려다 어지럼증이 일어 관둔 적도 있었다. 앞으로 해치워야 할 식사는 얼마나 더 많을까? 비워야할 그릇들이 회전초밥 집에서처럼 구불구불한 전동 띠 위에 늘어서있고, 안나는 마치 그 위의 초밥을 모조리 집어서 해치워야 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안나가 육체의 이 끈질긴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은 자기학대에 가까웠다. 바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먹어치운 뒤, 그 괴로운 포만감이 천천히 잦아드는 동안에라도 식욕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었다. 그날도 그녀는 이튿날이 돼서도 오후까지 뭔가를 먹지 않을 수 있도록 최대한 푸짐한 식사를 해둘 생각이었다. 학교 앞의 인도음식점, ‘나타라쟈’가 불현듯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발걸음이 이내 학교 쪽으로 되돌려졌다.

 나타라쟈는 50년대나 60년대에 지어졌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낡은 상가의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곧 무너질 듯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늘 손님으로 붐볐다. 안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어딘지 ‘어수선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일요일 저녁이 되면 휴식의 끝을 맞은 연인들이 목소리에 은근한 불만을 흘려 넣었으므로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연인들 가운데서 안나는 낯이 익은 얼굴도 몇 쌍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맨 구석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인도인 서버 한 명이 서툴지만 그런대로 소통이 가능한 한국말로 주문을 받아갔다. 안나는 그가 책상 앞에 혼자 앉아서 기억, 니은, 디귿, 리을을 외웠을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봤다. 그가 “나는 웨이터입니다”라는 문장을 구사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를 상상하고 나니 어느새 음식이 나왔다. 버터가 발려 반짝거리는 난과 쌀밥, 쇠고기야채카레가 은색 식기들 안에 담겨있었다. 안나는 그것들을 허겁지겁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음식을 집어 들고, 씹고, 삼키고 또 다시 집어 들었다. 접시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쯤부터 안나의 손놀림이 느려졌다. 폭식을 마치자 정수리가 마치 갈변한 데다 곳곳이 움푹 파인 사과처럼 짓물러진 것 같은 피로감이 찾아왔다. 안나는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이 얼마나 어두워졌는지 알고 싶었지만, 보라색 커튼이 셔터처럼 굳게 내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커튼 아래로는 인도 음식점에 어울리는 장식품들이 쭉 늘어서있었다. 안나는 특히 계산대와 가까운 창가에 놓인 무용수의 형상에 눈길을 주었다. 무용수는 허리를 살짝 비틀고 다리 하나를 허공에 든 채, 한 어깨에서 두 개씩 자라난 총 네 개의 팔들을 능숙하게 휘두르고 있었다.

 ‘팔 네 개로 춤을 추다니.’

 안나는 식당을 나가기 위해 슬슬 외투를 챙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무용수의 자태를 자꾸만 힐끔거렸다. 그의 신체는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며, 동작에도 단연 기품이 서려있었다. 안나가 언젠가 춤을 춘답시고 사지를 흐느적댔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프리게임으로 미리 한바탕 술을 마시고 들어간 클럽 안에서 안나는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채 춤추는 사람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그날따라 과음을 한 그녀는 주황빛 조명 아래서 한껏 들떠있었으면서도 정신이 몽롱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오감의 인상들만이 뜨거운 바다를 표류하는 부표처럼 머릿속을 동동 떠다녔다. 사람들이 머리칼을 흔들 때마다 콧속으로 끼쳐오는 향수 냄새, 귓속을 송곳으로 후벼 파는 듯한 전자음악 소리, 혀의 표피 위로 아직 남아있는 술의 뒷맛 같은 감각들.

 그중에서도 안나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은 입고 있던 원피스의 감촉이었다. 그녀의 홀터넥 원피스는 신체의 굴곡에 조금의 여유도 없이 딱 달라붙어있었다. 안나는 물건을 단단히 감싸는 포장지처럼 옷이 자신을 압박해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고 있었다. 옷의 안감을 통해 자신의 허리, 가슴, 불룩한 엉덩이 따위가 생생하게 만져지는 듯했다. 춤을 격렬하게 추면 출수록 옷이 이곳저곳으로 비틀리면서 육체의 젊음은 더욱더 확실하게 감각되었다. 그녀의 젊음은 마찬가지로 젊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드러났다. 이따금 주인을 알 수 없는 불쾌한 손길이 그녀의 골반께에 얹히기도 했다. 요컨대 그 무대는 피부에 주름 한 점 없는 이들이 몸의 유한한 아름다움에 영혼을 내맡기는 광장이었다. 참여의 자격이 엄격하게 제한된, 배타적인 향연.

 그런데 무대의 의미를 읽어낸 그 순간, '소멸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나의 뇌리를 스쳤다.

 천으로 싸맨 갈비뼈가 갑자기 펑 하고 터져버렸으면. 무너지는 젠가 블록처럼, 이 여성적인 신체가 한 부위씩 그러나 빠르고 정확하게 고장나버렸으면, 하는 바람들이 뒤이어 솟아났다.

 안나는 어째서 그런 꿈들이 꾸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쾌락의 극대점 위에서, 젊음의 최대치를 향유하는 동안에도 돌이킬 수 없는 추락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어느새 음악에서 멜로디와 리듬이 사라졌다. 한 전자음은 다음 전자음과의 연관을 잃은 채 명멸하듯 바로 자취를 감췄다. 안나는 원래의 기분을 되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여봤지만, 더 이상 이 소음을 흥겨운 소리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들과 같은 분위기 속으로 다시 녹아들어가기란 불가능했다. 현기증이 난 안나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둘러댄 뒤 바깥으로 나와, 그 길로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그 무렵의 불안한 동작들과, 지금 이 인도의 무용수가 누리는 균형 사이의 차이는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그래도 정말 춤을 추기 시작한다면 함께 돋은 두 팔이 서로 부딪치지 않을까? 세 개, 아니 네 개가 전부 동시에 부딪칠지도 몰라.’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그녀는 무용수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쳐다보았다. 형상의 발아래에는 “파괴와 창조의 신, 쉬바”라는 말이 영어로 적혀 있었다.

 ‘신이구나.’ 안나는 정수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신이라면 부딪치지 않고 춤을 출 수 있을 거야. 신이니까.’

 그녀는 식당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졌다. 출입문을 열자 상가의 황량한 로비가 나왔다. 어젯밤에 내린 비 때문인지, 실내인데도 공기가 눅눅했다. 어느덧 초가을에 들어선지라 기온도 높지 않았다. 안나는 얇은 카디건으로 덮인 팔 언저리를 쓰다듬어보았다. 옷감의 성긴 구멍들 속으로 바람이 무자비하게 스며들어왔다.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따뜻하게 껴안아주었으면 하는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집에 돌아간다 해도 그녀는 그대로 혼자일 것이었다. 안나는 풀이 죽은 채 출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상가의 계단을 오르는 발목 한 쌍이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안나는 살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뒤꿈치들을 보아왔다. 괴상한 취미로 누군가의 뒤꿈치의 면적을 재본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처럼 푸른 뒤꿈치는 처음이었다. 아니, 푸른색 뒤꿈치라니? 정맥이 두드러져 보인 걸까? 발목에 핏대가 서기도 하나? 그냥 내가 잘못 본 걸까?

 안나는 자신이 무엇을 본 것인지도 의아해하면서 상가를 나왔다. 흐린 날씨에도 태양은 성실히 추락해주었다. 도로변이 이미 어둑했고, 슬슬 출발을 해야만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발걸음을 돌리자니 그 푸르스름한 발목, 혹은 발목의 그 푸르스름함이 안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밝은 청록과 파랑의 경계에 있는 색깔이었다. 피카소가 20대 때 즐겨 썼던 청색과 비슷했다. 그 음울하고도 찬란한 푸른색. 음울하고도 찬란할 수 있는 유일한 색. 너무 아름답지만, 정작 현실 속에는 존재하지 않아서 액자 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이상적인 색. 불현듯 안나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발목의 주인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샘처럼 솟아났다.

 그리고 싶다, 라니! 안나는 이토록 갑작스럽고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생겼다는 데에 놀랐다. 왠지 그 모델이라면 자신을 오랜 슬럼프로부터 구제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돌연 희망에 취한 그녀는 황급히 계단을 올랐다.

 상가의 2층에는 머릿속을 맑게 해드립니다, 라는 팻말을 단 명상 센터와 ‘사브와(Savoir)’라는 이국적인 이름의 위스키 바가 함께 있었다. 우선은 파란 발목의 주인이 명상 센터의 직원일지, 아니면 사브와 쪽의 사람일지를 알아내야 했다. 다행히 이 문제는 풀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저녁을 맞아 영업을 개시한 사브와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으로 어느 푸르스름한 형체가 돌아다니는 모습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안나는 한 번도 위스키를 마셔본 적이 없었지만 과감하게 바의 문턱을 넘어섰다. 그곳에는 악취인지 향기인지 애매한 알코올 냄새가 괴어있었다.

 그 속에서 안나는 파란 피부의 아르바이트생 진현을 마주하자마자 첫눈에 그에게 이끌렸다.


*프리드리히 니체, 황문수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문예출판사,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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