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담이나 소회 같은 것

20211001 석사논문 쓰기 시작하는 일기

 꽃길만 걷자~

 쉬엄쉬엄 ⟪위기⟫를 읽는 사이 9월이 다 갔다. 중간에 연휴와 생일이 겹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지낸 시간도 있었고, 공부를 마치고 쉴 때는 거의 무조건 영화를 봤다. 미술을 전공하는 동생 둘과 네다섯 번의 세미나에 걸쳐 독일어 단어를 2000개 외운 것도 나름 큰 일이었다. 왕뿌듯!!! 하지만 이제는 10월이 되었으니 석사논문을 우선순위 1순위에 두고 시간을 운용해야 한다.

 오늘은 나의 석사논문 프로포잘에 대해 지도교수님과 면담을 나눴다. 내가 제출한 프로포잘은 생활세계를 통한 환원과 데카르트적 환원 사이의 관계성을 후자의 한계 그리고 전자의 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를 관통하는 연속성을 중심으로 주제화한 것이었다. 이에 교수님께서는 그 주제에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의 구분법을 도입해서 논문의 규모를 키우고 테제를 더 정교하게 짜라고 말씀하셨다. 또 현상학적 환원에 대한 후설의 사후 유고뿐 아니라 생활세계 그리고 상호주관성에 대한 사후 유고도 살펴봐야 한다고 하셨다. 논문의 주제와 대략적인 방향성을 승인받아 들뜨기도 했지만, 갑자기 읽어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불어서 조금 압박감을 느꼈다. 면담 후 공부를 바로 시작하기가 싱숭생숭해 philpeople에 들어가 현재 현상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의 소속 대학과 퍼블리케이션을 살펴봤다. 나는 후설 하나만 하기에도 벅찬데 다들 어떻게 그렇게 관심 분야가 넓은지... 유학을 간다면 벨기에로 갈지, 독일로 갈지, 미국으로 갈지... 소설은 또 언제 쓸지...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던 건데 서칭을 하는 동안 괜히 더 심란하고 싱숭생숭해졌다. 오늘은 새로운 달의 첫날이니까 너무 힘주지 말고 앞으로의 계획이나 좀 짜야겠다.

 일단 해야 할 일과 그 대략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D. Moran의 ⟪위기⟫ 입문서 마저 읽고 정리하기 ②환원의 상호비교에 대한 고전적 논문인 Kern (1962) 읽고 정리하기 ③환원의 상호비교에 대한 최신 논문인 Luft (2004) 읽고 정리하기 ④이남인 선생님의 ⟪현상학과 해석학(2004)⟫, Aguirre (1970), Bernet & Kern & Marbach (1989) 등을 읽으면서 정적 현상학과 발생적 현상학의 구분법 공부하기 ⑤⟪논리연구⟫, ⟪이념⟫, ⟪이념들⟫ 1권, ⟪제일철학⟫ 2권, ⟪수동적 종합⟫, ⟪데카르트적 성찰⟫, ⟪위기⟫ 요약해둔 것 정독하고, 필요한 부분 무조건 독일어 원문으로 다시 읽고, 관련 2차 문헌들 찾아보면서 나의 해석적 테제 짜기 ⑥후설의 사후 유고 셋(Hua XV, XXXIV, XXXIX) 읽으면서 해석적 테제 강화하기. 그러면 일단 다음주 일요일(10.10)까지 ①, ②, ③을 수행하고, 그 다음 2주동안 ④를(~10.24), 10월 마지막 주부터 11월 말까지 ⑤와 ⑥을 수행해서, 12월 초를 데드라인으로 잡고 그때 논문의 세세한 개요가 담긴 파이널 프로포잘을 교수님께 보내야겠다. 적어도 12월 초에는 프로포잘을 승인받아야 12월 중순까지 코스웍의 기말리포트를 작성하고 크리스마스 앞뒤로 조금 휴식을 취한 뒤 마치 동물이 정갈한 마음으로 겨울잠을 자듯 1, 2월에 석사논문 집필에 몰두할 수 있다. 중간에 이미 초고를 완성해둔 소설 한 편을 퇴고 및 탈고해서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공모전에 응모해야 하고, 독일어 단어 세미나와 독해 세미나 그리고 한 수업뿐이긴 하지만 코스웍을 병행해야 하기도 한다. 

 물론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이다. 어떤 단계에서 무엇이 틀어질지 모른다. 분명 2차 문헌을 읽는 단계에서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자신의 생각으로써 결정하고, 그것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데서 긍지를 찾아도 좋다고 스스로 허락하는 일은 언제나 의미있다. 12월 초까지 해야 할 일을 다 못하면 어떻게 될지 두렵지만, 겨울방학은 기니까 비빌 언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중독자마냥 매일 같이 들여다보던 쇼핑 앱도 어제 밤에 차단했고 곧 백신 접종까지 마치면 학교에 나갈 수 있으니, 한 갈래로 모인 차분한 마음으로 내게 부여된, 내가 나 자신에게 자발적으로 부여한 존엄한 의무들을 실천해나가자.